통권 제 8 권 45호
설교일자: 1999. 11. 7.

새로운 결단(수24:14-25)

1.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은 커다란 기쁨보다 아쉬움이 많다. 2000년이라는 새해는 이제 불과 2개월도 남지 않았다. 정부에서는 새 천년을 맞이하는 대문을 곳곳에 세우고, 방송계에서는 2000년 특집 준비로 전세계가 떠들썩하게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 동안 우리의 사역을 회고하면 부족하고 나약한 것 밖에 없었다. 무엇을 통해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준비해야 할지 부족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돌아보아 오늘까지 온 것에 대해서는 감사를 드린다. 이스라엘 백성이 세겜에 모여 여호수아의 고별설교를 들으면서 광야의 삶과 이스라엘에서의 새 삶을 돌이켜 볼 때에 아직까지 주님의 마음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여호수아는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정한 결단을 요청하고 있는 것처럼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삶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20세기는 정보화와 지식기반의 사회로 변화하게 된다. 보다 우월하고, 감성적이고, 통전적인 삶의 태도를 지향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세기를 적응하기 힘들 것이다.
2. 결단의 동기는 하나님 신앙의 고백이다. 그 시대에 종교적, 군사적 중심지였던 세겜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모였다. 그리고 그들은 진정 섬겨야할 분이 누구인지를 선택하라는 여호수아의 요청을 듣게 된다. 우리 또한 삶의 순간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할지 내 욕심과 세상의 유혹을 따를지 결단하게 된다. 그것은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자신의 신앙은 자신이 결단해야 한다.(마25장) 그리고 그 신앙의 역사는 자손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치게 된다. 먼저 신앙인된 우리들이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은총을 되새기면서 주님께 감사와 찬양으로 결단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특별히 주님 안에서 안식일을 지킴으로서 삶이 차원을 좀더 하나님 중심적인 태도를 지향하게 된다. 자신의 삶의 일부분이 바로 하나님께 드려지고, 영적인 교제를 나누려고 노력할 때에 고백적인 삶이 태도가 나오게 된다. 이러한 교제는 모든 선한 것을 그리스도안에서 깨닫게 된다.(몬1:6)
3. 결단은 진정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합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형식보다 마음이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인 형식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수께서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마5:20)를 강조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말로만 떠드는 사회, 기본적인 덕조차 갖추려하지 않는 사회의 현실이 오늘과 같이 피곤한 현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번 호프집화재 사건은 이러한 비리와 왜곡된 현실에 대한 증언인 것이다.(마13:15) 우리는 머뭇거릴 새가 없다.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하나를 이루는 일이다.(요17:21) 예수께서 오신 이유는 바로 온전한 통일인 것이다. 그분 안에서 사랑과 기쁨과 소망으로 하나가 되어 주님의 영광스러운 날을 맞이하는 것이 바로 그분의 꿈이요, 미래였다.(엡1:7-10)
4. 결단이란 실행함으로써 새 역사를 맞이해야 한다. 꿈과 미래를 위해서 우리는 온전히 청종(聽從)해야 한다. 믿음의 근원은 들음이다. 모세를 통해 주신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이 듣고 응답하듯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친절한 사랑과 헌신을 따라갈 때 승리하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결단없이는 미래도 없다. 우리 앞에 놓인 문제, 답답함, 갈등은 주님 앞에 복종하고 따를 때 온전히 해결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이러한 결단을 위한 주님의 요청이다. 이러한 요청 앞에 영적 주파수를 맞추어야 하지 않을까?(롬6:5)

♧ 주일 공동 기도 ♧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날마다 저희들을 위해 주님의 따스하고도 한없는 보살핌으로 인도해 주시니 하나님의 선하심을 깨닫게 됩니다. 그 놀라운 은혜를 인하여 감사드리오니 새로운 삶과 주님의 영광을 향해 나아가는 삶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세상 근심과 헛된 소망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거룩한 분노와 아름다운 눈물로 주님을 섬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성령으로 함게 하셔서 우리의 더러움과 죄악을 정결하게 하여 씻겨주시고, 주님께 온전히 순종할 수 있는 믿음과 사랑의 능력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주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 생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어두운 길을 갈 때에 밝은 등불이 되어주시고, 주님의 지혜로 이 세상을 바라보게 하시니 우리의 앞길은 평탄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살아 숨쉬게 하시고, 당신의 거룩한 평화와 사랑으로 우리를 온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명상의 시간 : 예배의 본질

성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 그 일차적인 역할이라고 했는데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예배의 본질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새롭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개신 교회는 예배를 하나님에게 영광을 찬송을 드리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왜 어떻게 하나님께 예배를 통해서 영광 돌려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많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은 절대자시고 창조주시며, 거룩한 분이므로 피조물인 인간이 예배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을 한다. 물론 이 주장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유대교나 혹은 창조신앙을 믿는 다른 종교인들의 대답과 다를 바 없다. 왜 하나님에게 영광과 찬송을 돌리느냐는 물음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그리스도 사건과의 연관성 아래서 대답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왜 하나님에게 예배를 통하여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가?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시고 우리와 모든 창조물을 구원하는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마땅한 대답이다. 더 간단히 말해 그리스도인들이 예배하는 가장 중요한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총 때문이다.

- 이호형, "설교의 문제점과 나아갈 방향"에서, 강단과 목회 99.11-12

통권 제 8 권 46호
설교일자: 1999. 11. 14.

종말시대의 삶(살전5:1-11)

1. 사람은 예기치 않은 사건에 대해 두려움이 있습니다. 특별히 인류의 종말이란 무시무시한 대 명제 앞에서 누구나 한마디 할 수 있지만 막상 그러한 일이 덮칠 때에 어안이 벙벙해져서 유구무언의 상태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근래에도 이러한 것과 관련되어 "그날 이후" 라든지, "인디펜던트 데이", "딥 임팩트", "제3의 원소"와 같은 부류의 영화가 이러한 종말론적인 세계관을 담은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영화의 특징은 인간의 마성(魔性)을 강조하거나 예기치 않은 우주의 침입 혹은 혜성과의 충돌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구 외적인 요소에 대해 인간의 따뜻한 감성으로 문제를 극복해 나가지만, 큰 우려를 나타내는 문제는 인간의 내면적인 분노 등에 의한 "그날 이후"와 같은 영화가 현실화되는 것에 대한 우려입니다. 지난 금요일에 등산을 갔다가 내려오는 길을 잘못 찾아서 늦게 하산하는 바람에 그만 버스를 놓쳐 버렸습니다. 그러나 한편에는 저를 위해 몇몇 동료들이 저를 위해 기다리는 것을 보고 안심을 했습니다. 겸연쩍은 얼굴로 함께 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진실로 마지막 날에 동떨어진 인간존재를 구원의 길로 이끌어 주실 분은 누구인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로 성서는 그러한 종말의 날을 예비하는 성도가 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2. 종말의 특징은 1) 도적같이 임하기 때문에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시간입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일이든지 시간을 정해놓고 일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종말의 시간은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을 피하는 사람들은 시대의 흐름에 대해 관심도 없고, 사랑과 진실보다는 개인적인 욕망이나 권력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기에 진정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는 생과 영혼의 종말입니다. 2) 그 날은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을 싫어하고 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북한 지하교회의 성도들은 고통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히려 남쪽 사람이 신앙생활이 가능한지를 물었다고 합니다. 종말의 시대를 선과 사랑으로 극복하려는 자세로 살아가지 않으면 종말은 공포와 절망 밖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3) 성도는 그날이 가까움을 이해할 수 있으며, 구원이 예비 되었습니다. 종말은 이중적인 것입니다. 불신자들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자들에게는 심판이 날이지만 성도들에게는 영광과 기쁨의 잔치가 벌어지는 날입니다.
3. 그러므로 종말 시대의 성도는 먼저 1) 빛의 자녀로 살아가야 합니다. 남에게 모범이 되고 올바른 길을 지시하고 드러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있을 수 없는 재난과 문제와 비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우리 성도들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둠과 슬픔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정의와 위로가 넘치게 해야 합니다. 2) 깨어 근신해야 합니다. 성도의 삶은 세상 욕정과 악한 세력과의 투쟁입니다. 먼저 주님 안에서 변화되고 새로워질 때에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 거룩한 나라의 역사를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3) 신망애의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믿음과 사랑으로 무장하고 늘 주님이 역사를 소망하면서 용기를 잃지 않고 선을 베풀 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임할 것입니다. 4) 권면하고 덕을 세워야 합니다. 덕을 통해 교회를 세우고, 나라를 세우고 지혜로운 백성을 키워야 합니다.

♧ 주일 공동 기도 ♧

우리 믿음의 조상을 인도하신 하나님,
오늘도 저희의 발걸음을 선한 길로 인도하시고, 주님의 거룩하신 은총의 보좌를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생명의 길을 따름으로써 참된 행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도록 이끌어 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인생의 목적과 삶의 슬기를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우리들을 온전한 생명의 길로 이끌어 주시고, 우리 내면의 무질서와 부족함을 다스려 주님 앞에 내어 맡기는 저희들이 되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하나님을 찬양함으로써 주님의 사랑의 깊이와 내적인 음성과 능력을 체험하도록 은총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눈을 들어 우리의 영원한 도움이신 하나님을 경배하며, 믿음과 감사의 열매를 주님 앞에 봉헌하는 삶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추워져 가는 겨울의 서늘함 가운데 북녘의 동포들에게 따스한 은총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여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명상의 시간 : 북한성도의 신앙

예수의 고난을 함께 나누는 북한 신자들의 고백을 연변과학기술대학 김연경 교수의 간증을 통해 북한 지하교회의 신앙수칙으로 알려진 예수님 전사들의 수칙을 통해 북한 성도의 신앙을 엿볼 수 있다.

-예수님 전사들의 수칙

1. 예수 믿는 사람은 천대를 받게 되어 있다. 그것이 긍지요 기쁨이요, 고난을 당연하게 받아야 한다.
2. 칭찬을 받는 것보다 욕먹는 것을 먼저 배우라
3.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인민의 눈물을 닦아주고 서로 눈물을 닦아주며 주위의 모든 고통 당하는 자의 위로자가 되어야 한다.
4. 사랑이 사랑을 낳고 또 그 사랑이 새로운 사랑을 낳고 그 사랑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을 예수의 전사들로 만들어지고 있다.
5. 성경이란 잣대로 제일 먼저 살아야 한다.

통권 제 8 권 47호
설교일자: 1999. 11. 21.

감사가 넘치는 삶(고후9:6-15)

1.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여러 사람들에게서 도움을 받기도 하고 도움을 주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감사한 마음을 표시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오늘날 감사(感謝)란 글자 그대로 사례할 기분을 느끼거나 고맙다는 말을 전달함으로 그치고 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요즘은 아예 감사하다는 말조차 없는 무응답의 사회로 치닫고 있는 것 같다. 사례는 커녕, 감사한 마음조차 없어 보인다. TV에서 등산객을 위해 봉사하는 한 진돗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등산로를 인도하는 가축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는 데 하물며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제대로 감사드리지 못하는 우리의 부족함을 깨닫게 된다. 바울은 마게도니아와 고린도교회를 향해 예루살렘교회의 어려운 문제를 말하고 그들을 위해 돕도록 권면했으나 그 결과가 미미했다. 그래서 바울은 예루살렘을 방문하기 전에 고린도 교회에게 남을 돕는 일에는 책임의지가 있다거나 자기만족, 혹은 체면 때문이 아니라 진정 우러러 나오는 사랑으로 봉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2. 감사는 주님의 은총에 대한 응답이다.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값없는 은총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삶의 사고방식을 요청한다. 즉 자기중심적인 삶에서 타인 지향적이고, 공동체 지향적인 삶으로 전환하도록 요청한다. 내적인 혼란에서 벗어나 영적인 삶으로 전환하여 건덕(健德)의 삶을 살도록 요청한다. 완악한 마음, 고통을 주는 언행심사 등 이러한 것은 하나님의 듯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열린 마음, 즐거운 태도로 풍성한 삶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늘 감사하며 살아가야 한다. 바울의 말대로 선하고 아름다운 일에 "많이 심은 자"가 되어야 한다. 많이 심을수록 많은 선한 열매를 거두게 된다. 바로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의 요구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고통은 나눌수록 적어지고, 은총은 나눌수록 확대된다.
3. 감사는 봉사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바울은 관대한 마음자세로 예루살렘교회를 위해 연보를 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진정한 나눔과 헌신이야말로 교회를 살찌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하나님은 가난한 이들을 향해 아낌없이 부어주시는 분이시다. 그러기에 주님의 자녀로써 넉넉하게 대접하고, 헌신하며, 헌금할 줄 하는 것이 성도의 자세이다. 교회를 이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게 되고, 마침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헌신을 주님께서는 기억하시고, 갑절의 은혜와 복을 내려 주신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선한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관대한 사람으로 주변에 모이게 하신다. 많은 재물을 갖지 않아도 넉넉한 삶을 사는 수양(修養)과 덕을 가진 이로 영적 성장을 해야 한다.
4. 감사는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은 타인에게 베풂으로서 우리의 사랑과 더불어 하나님의 은총을 전달한다. 그러므로 신앙은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드러내는 고백적인 삶이다. 바울은 남을 돕는 일의 유용성을 말하는데, 이는 곧 타인에 대한 도움과 보조는 하나님의 은혜를 대신하는 것이며, 자신을 위해서는 그리스도인 됨을 확증하는 행위이며,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을 돕는 일에는 자발적이며, 즐거운 마음으로 행할 때에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를 돌리는 사건을 창조하게 되는 것이다. 매일 감사가 넘치는 성도가 되기를 기원한다.

♧ 주일 공동 기도 ♧

우리에게 가을의 넉넉함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올 한해를 되돌아보니 온통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릴 것으로 가득 찼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날마다 우리의 부족한 정성과 부끄러운 헌신 밖에는 주님 앞에 드린 것이 없지만 주님의 은혜로우신 복은 우리 마음과 삶을 변화시켜 주신 것을 믿습니다.
겸손한 이들을 돌보시고, 죄인됨을 고백하는 이들을 용서하시는 주님, 감사의 조건이나 원인을 찾기보다는 먼저 감사할 줄 아는 참된 믿음과 거룩한 소망으로 주님 앞으로 나아왔사오니 성령을 충만히 부으사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은혜로 인하여 오곡백화는 풍성하고, 직장인들은 한숨을 덜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도 어느 정도 회복되고, 마음의 여유가 있지만 추워져 가는 초겨울 바람은 가난한 이들의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이 시간 우리의 정성으로 감사예물를 드리오니 기뻐 받아주시고, 풍성한 복과 선하신 은총을 내려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날마다 주님을 아는 지식과 그 다함없는 사랑을 본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참 마음으로 감사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명상의 시간 :고통에는 이유가 있다.

17세 때 수영을 하다가 목이 부러진 조니라는 소녀의 이야기가 책으로 출판된 적이 있다. 조니는 손발을 움직일 수 없는 불구가 되었다. 그녀는 입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많은 글을 쓰고 또 여러 곳에서 강연을 하곤 했다. 그는 자기가 쓴 "조니의 신앙"이란 책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가 하고 있는 그림과 가족 및 친구들의 도움은 나를 완전히 절망에서 끌어내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휠체어에서의 이 인생으로부터 무엇보다도 먼저 감사받으셔야 할 분은 하나님뿐이십니다. 성경 말씀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수수께끼를 풀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다시 생각해 보면 마비로 인한 내 모든 시련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 내리신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나는 미로에 빠진 생쥐가 아니었습니다. 잔인한 신의 장난이 목표를 둔 공격물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고통 뒤에 '이유'를 두고 계셨고, 그것을 조금 알고 난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여러분의 고통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이유를 가지고 계십니다."

통권 제 8 권 48호
설교일자: 1999. 11. 28.

기다림의 신앙(사64:1-9)

1.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기쁨입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소망하지 않고 기다림조차도 없다는 것은 커다란 슬픔이요. 절망입니다. 그러기에 기다림은 곧 희망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희망의 사람들입니다. 고통과 절망에 놓인 백성들을 향한 복음의 말씀과 정의로운 시대에 대한 꿈을 갖고 있기에 기다림이 있습니다. 알프스의 한 동굴을 방문한 그레이 목사님은 동굴 속을 들어가자 점점 어두워졌습니다. 그러자 안내인이 말하기를 잠시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지 한 5분쯤 지나자 모든 것이 환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눈이 밝아지자 동굴 벽과 천장이 반투명의 초록색으로 희미하게 빛나며, 아름다운 세계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기다림은 우리의 눈을 열어 우리 주위에 있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것들을 보게 해준다. 인내하면서 주님께 순종하고 기다릴 때에 우리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절망가운데 기다림이 있다는 것은 곧 겸손한 믿음입니다. 한 여인이 극장에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 극장에 전화를 걸어 다이아몬드를 주웠는지 질문하자 지배인은 최선을 다하여 찾아보겠노라고 말하고 마침내 찾아냈으나 그 전화한 여인은 이미 전화를 끊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기 위해 우리의 전 생애를 바쳐 기다리지를 못합니다. 조그마한 아픔과 절망 속에서 그만 믿음과 기다림을 잃어버리고 주님의 응답을 받는데 실패하고 맙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에 끌려가 노예생활을 하면서 그들의 믿음을 재점검하고, 주님의 은총의 날을 기다렸습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 역시 주님의 날을 기다리면서 희망 중에 웃으며 모진 고통을 감당하였습니다. 너무나 급변하는 이 시대의 흐름가운데 정적인 하나님의 은총을 깨닫는 성도가 됩시다.
3. 주님을 기다리는 믿음은 은총과 회개의 만남입니다. 이 기다림은 중대한 결단입니다. 주님 없이 사는 삶이 아니라 주님을 기다리는 삶은 곧 주님의 모든 은총과 심판 앞에 순종하는 삶이기에 이는 회개 없이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음을 열고 주님의 말씀과 은총 앞에 겸손히 엎드려 우리의 불의와 죄악을 고백하고 성령의 역사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이 세계는 진리가 왜곡되고, 사랑이 변질되었으며, 정의가 부패하였으며, 권위가 땅에 떨어진 사회가 되었습니다. 이는 곧 자신에 대한 회개가 없음이요, 욕심과 교만으로 가득한 허망한 데에 소망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들은 주님의 강림을 기다립니다. 거짓과 위선, 부정과 부패, 허무와 우상숭배에 빠진 이 세계 속에서 자신을 정화하고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진리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4. 기다림을 통해 우리는 주님의 뜻을 깨닫게 됩니다. 돌에 계란을 던지면 계란이 깨어지지만 머지않아 그 계란으로 인해 이끼사이에서 자란 작은 나무가 그 바위의 틈을 내어 깨어버리고 맙니다. 또한 아무리 단단한 바위라도 끊임없이 떨어지는 물줄기에 그만 구멍이 나고 맙니다. 진리는 영원한 것입니다. 진리는 우리를 속이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그 진리를 우리에게 선포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십니다. 주님의 뜻을 겸손하게 받아들인 성모 마리아에게, 그리고 자신을 사람으로 인정해 주길 고대했던 삭개오에게, 진정 주님을 위한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하여 열심을 내었던 베드로와 바울에게 나타나신 주님께서 이 강림절기에 우리 성도들의 마음속에 찾아 오시기를 기원합니다.

♧ 주일 공동 기도 ♧

자비로운신 하나님, 우리의 영원하신 주여, 당신의 거룩한 부름 앞에 저희들은 겸손히 무릎을 끓습니다. 가물한 영원의 세계로부터 은혜와 진리의 말씀을 저희들에게 선포하시려고 이 땅에 오시는 주님의 강림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주님의 능력은 위대한 사랑의 힘임을 고백합니다. 허물과 죄로 주님의 은총과 역사를 감당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뜻과 욕심으로 인해 마음상하고, 허탄한 고통 속에서 번뇌하는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의 도리를 가르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의 미래를 계획하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우리를 새롭게 하여 주시옵소서. 좌절과 패배의 시련가운데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게 하시고,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은총을 받아들이고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이 변치않게 하시고, 주님 나라 이를 때 잘했다 칭찬받는 믿음의 백성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추운 겨울에 고통당하는 모든 이들을 불쌍이 여겨 주시고, 당신의 따뜻한 자비를 내려주시어, 훈훈한 인정이 넘치는 이 사회가 되도록 붙잡아 주시옵소서. 사랑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명상의 시간 : 성공하는 가족들의 7가지 습관

성공하는 가족들의 7가지 습관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를 찾아내게 하고 이를 실천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그 7가지 습관을 내면화 해 나가면서 신앙인의 깊은 도리를 깨달을 때 우리는 진정 승리하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1. 주도적이 되라. - 책임을 다하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2. 목표를 확립하고 행동하라. - 분명한 사명의식이 필요하다.
3. 소중한 것부터 먼저 하라. - 초점을 추어야 해결점이 보인다.
4. 상호이익을 추구하라. - 모든 사람이 승리하는 길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5. 경청한 다음에 이해시켜라. - 진지함과 용기 그리고 따뜻한 배려가 필요하다.
6. 시너지를 활용하라. - 문제 해결의 길은 바로 상호작용이다.
7. 끊임없이 쇄신하라.- 성장은 곧 변화이다. 창조적 에너지를 발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