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권 제 8 권 36호
설교일자: 1999. 9. 5.

권면하는 교회(마18:15-20)

1. 요즘 옷문제 청문회, 주가조작 등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더 복잡하게 만드는 가운데 동티모르의 독립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고 있다. 이는 동티모르의 참상을 국제적으로 알리는 여러 활동의 구체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일제 강점하에 국제적인 단체 등을 활발하게 접촉하면서 국제적인 지원을 이끌어내 독립에 이른 것처럼 동티모르 역시 인도네시아를 지지하는 자치파의 위협과 테러에도 불구하고 78%의 독립 찬성투표를 함으로써 유엔의 지원을 받아 독립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1976년 강제점령을 인도네시아 국회가 폐기 결정을 내린 후 유엔과도정부기간을 거쳐 독립하게 된다. 국제적인 문제에 대해 유엔이 국제적 권위로 시비를 가리는 것처럼 신앙의 사건들에 대해 교회는 사회에 대해 권면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이다. 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교회의 권위는 올바로 서게 될 것이다.(마5:13-16,마6:33)
2. 교회는 사회의 불의에 대해 권면해야 한다.(눅3:7-8) 현대인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 시대의 성도들의 신앙과 문화적 차이 외에는 동일한 것이어야 한다. 애매한 원리나 중립적인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은 불신앙에 근거한 결과이다. 기독교인의 윤리적 기초는 사회의 윤리와 개인윤리의 사이에 서있는 것이 아니라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 한국교회의 눈부신 성장의 뒷편에는 아직도 불의한 면이 많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진실해지기, 자연에 대한 성실함, 불의한 세력에 대한 강한 반작용을 상실할 때 이미 교회는 교회됨을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하늘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눅1:10-11) 예배나 성찬 그리고 친교와 더불어 하나님의 자비와 정의를 드러내는 교회가 될 때 연약한 것 같으나 강하고, 부족한 것 같으나 풍요한 교회가 되는 것이다.
3. 교회는 사회적 봉사에 동참해야 한다.(행2:42-47) 교회는 교회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터키의 대지진으로 인한 국제사회의 동참가운데 우리 나라에서는 동아일보가 중심으로 터키 지원운동은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이 선포한 사회윤리의 핵심은 편가르기 없는 인류애이다. 이러한 신앙에 근거하여 교회는 하나님의 뜻과 정의, 평화를 이 땅에 이루어 나가야 한다.(사56:6-7,렘22:3)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으로 살기를 결단했다는 사실과 이 언약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헌신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구약은 배제된 법이나 폐기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빛으로 새롭게 해석하여 우리의 내면에 더 구체화시켜 나가야 할 원칙인 것이다.(딤전1:8)
4. 교회는 이 사회에 하나님의 임재를 드러내야 한다.(요14:16-17) 교회의 존재가치는 종교적, 문화적 , 사회적, 경제적인 등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며, 하나님이 주님을 기대하는 자들의 소원을 응답하시고 함께 계신다는 것이다. 교회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계10:6)는 사실을 선포하는 행위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정의는 율법을 아는 지식에 의해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영적인 변화를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때, 사랑과 진리가 나타나고, 정의와 원칙이 세워지는 것이다.(암5:24) 우리나라의 재벌개혁의 문제점은 법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실제로는 문제없이 처리되는 바로 사회적 책임의 부재인 것이다.

♧ 주일 공동 기도 ♧

우리의 소망과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
하늘의 은총과 평화로 우리를 이끌어 주시고, 떠오르는 밝은 태양아래 푸른 잎사귀에 머금은 아침 이슬같이 영롱한 믿음을 허락해 주시니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충실한 믿음으로 더욱 새롭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따라 사는지를 깨닫는 성도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헛된 일, 거짓된 행동에서 벗어나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역을 위해 지혜와 용기있는 결단을 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영적 보화를 마음에 지님으로써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하여 고상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주의 거룩한 백성들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함께 나누는 기쁨을 통해 더욱 풍성해지고, 절망과 고통과 비극이 멀어지고, 소망과 능력과 자비가 넘치는 사회가 되도록 그리스도께서 이 땅 위에 화해의 빛을 비추어 주시옵소서.
거룩한 은총을 허락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명상의 시간 : 뇌건강법

1. 아침을 챙겨먹는다. 뇌활동 에너지원인 탄수화물이 듬뿍 든 쌀밥에 신경전달 물질 생성에 필요한 달걀노른자 생선 등을 반찬으로 먹는다.
2. 음식은 딱딱한 것을 먹는다. 일본 아사히대 치과대 연구팀의 쥐 실험에서 딱딱한 먹이를 먹은 쥐가 똑같은 성분과 양의 물렁한 것을 먹은 쥐보다 미로테스트를 더 잘 통과했다.
3.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감각을 유지한다. 미국 버클리대학 연구팀이 어린 쥐와 늙은 쥐를 함께 살게 했더니 늙은 쥐의 뇌무게는 늘었지만 젊은 쥐는 그대로였다.
4. 손을 많이 움직인다. 대뇌피질이 활성화된다.
5. 푹잔다. 기억력이 향상된다. 취침전 숙면을 돕는 트립토판이 풍부한 우유나 치즈를 약간 먹으면 좋다.
6. 깨끗한 공기를 마신다. 음이온이 풍부한 신선한 공기는 뉴런의 성장을 돕는다.
7. 전뇌훈련을 한다. 좌우신체를 균형있게 사용하며 수험생이나 사무직 종사자는 공상을 하거나 음악, 미술 감상 등으로 우뇌를 활성화시킨다.
8. 틈나면 운동한다. 미국 솔크생물학연구소의 쥐실험 결과 운동은 해마세포의 성장으로 도와 기억력을 높인다.
9. 뇌에 피가 들어오는 것을 막는 흡연과 직접 뇌세포를 파괴하는 폭음을 삼간다.

통권 제 8 권 37호
설교일자: 1999. 9. 12.

주님의 손길(출14:19-31)

1. 어떤 어린이가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놀이공원에 놀러갔다가 즐거움에 빠져 자기도 모르는 새에 그만 아버지의 손을 놓아버리고 말았습니다. 먹는 것도, 재미있는 구경거리도 다 의미 없고 두려움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험한 인생 길을 사는 동안 우리가 때때로 열심을 내면서 내 힘으로, 내 경험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우리와 함께 사는 가족, 친구, 그리고 우리의 영혼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놓칠 때에 우리는 고아요, 미아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모든 것이 잘되고, 승승장구하였으나 요셉의 도움을 알지 못하는 이집트의 바로(왕)가 등장하자 그들은 노예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집트의 풍요에 빠져 주님의 손길을 잃어버렸을 때 그들의 고통은 시작되었으며, 그들이 주님의 손길을 애타게 간구할 때 주님은 그들을 위한 구원과 도움의 손길이 되셨습니다.
2. 주님의 손길은 고난 당하는 자를 위한 도움의 손길입니다. 우리는 최소한의 은혜(Grace of minimum)와 최대한의 은혜(Grace of Maximum) 사이에서 살고 있습니다. 최소한의 은혜란 그저 생존이 지상목표인 인생을 말합니다. 이들은 먹고 마시며 즐기는 일에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대한의 은혜 안에 거하는 사람은 주님의 은혜를 간구하며, 역사 안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생명을 풍요하게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는 인생입니다. 야곱은 두려움 가운데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목적을 발견하여 가족과 화해하였고, 에스더는 목숨을 건 금식기도를 통해 민족의 구원을 이루어 냈으며(에7:3-4), 다니엘은 변함없는 기도의 삶을 통해 주님의 영광을 드러냈습니다.(단6:26)
3. 주님의 손길은 불의를 미워하시는 손길입니다. 죄악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분명히 자기의 악한 행동에 대해 후회하지만 그 불의한 일에 빠져 들어가는 동안 자신을 반성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회의 분위기가 이들로 하여금 변화되고 올바로 성장하도록 돕는 역할을 대신해주는 창구가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진정한 사회복지는 마음을 돌이키도록 돕는 기관이 성장하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의를 미워하시지만 사람을 미워하시지는 않습니다. 최근 동티모르에 대한 인도네시아의 태도는 국제적인 불의로서 반드시 하나님의 손길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침마다 불의를 심판하시는 분입니다.(시101:8) 불의를 만나서 불의를 버리고, 교만을 만나면 교만을 버리고, 악을 보면 투쟁할 수 있는 영적인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어야 합니다.
4. 주님의 손길은 영원한 구원의 손길입니다. 하나님은 사회적으로 도움 받기 힘든 약한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강한 자의 믿음은 헌신과 봉사를 위한 믿음이요, 가난한 자의 믿음은 깊은 영성과 은혜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풍성한 복을 받아 누구나 다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평균케 됨으로 아쉬움 없이 서로 돕고 사는 세상이 되는 것을 원하십니다.(고후8:1-15) 구원의 손길에 참여하는 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가졌습니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주님을 신뢰할 때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홍해로 건너고, 요단강에 빠져드는 용기가 그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한 것입니다. 존 웨슬리가 영국의 북부지역을 순회하면서 전도할 때 당한 폭언과 돌팔매질을 극복할 때에 타락한 영국을 변화시켰고, 오늘날 감리교회가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손길을 함께 나누는 성도가 됩시다.

♧ 주일 공동 기도 ♧

자비로우신 손길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주 하나님,
열린 마음을 찬양하는 주의 자녀들 가운데 찾아오셔서 영광과 은총을 드러내어 주시옵소서.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일이 세상의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메마른 우리의 영혼위에 은혜의 소나기를 내려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부족한 인내를 당신의 의로운 생명수로 채워주시고, 주님께 순종함으로 주의 평안을 넘치도록 받는 저희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사역을 위하여 용감하게 하시고, 불의를 향하여 선한 인도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의 영과 불꽃같은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함께 하시고, 능력과 기쁨으로 주의 은총을 나누는 저희들이 되기를 원하오니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힘든 팔을 붙잡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명상의 시간 : 하나님 앞에 나를 바쳤을 때

하나님 앞에 나를 바쳤을 때 하나님은 나에게 오셔서 나 자신과 나의 문제들을 당신의 영원한 눈으로 보게 하셨다. 하나님은 당신의 생각을 내 마음속에 넣어 주시고 특히 당신의 판단력을 내게 주셨다. 그리고 나의 시야를 넓혀 주시고, 삶을 사는데 무엇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며 중요한 것과 중요치 않은 것을 어떻게 구별하는지를 가르쳐 주셨다.
나는 망상이란 중요한 것과 중요치 않은 것을 혼동하는 상태라고 본다. 내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어떤 사건이 가까이서 일어날 때면 나는 몹시 긴장하여 모든 것을 지나치게 과장하여 생각하곤 했었다. 그리하여 엉뚱한 곳에 뛰어들어 싸움을 하려 하거나 엉뚱한 문제에 초점을 두곤 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을 전부 하나님께 말씀드리면 하나님은 내 곁에 오셔서 부드럽게 내 마음을 당신의 생각과 당신의 희망으로 가득 채워주셨다. 그리고 나를 혼동에서 구해 주셨다.

- 그분의 손길 , 존 포웰 -

통권 제 8 권 38호
설교일자: 1999. 9. 19.

천국의 원리(마20:1-16)

1. 인디언 속담에 "좋은 것일수록 나누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인간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돈이다, 명예다 하며 진정 함께 나눔의 원리를 깨닫지 못합니다. 땅이란 것도 그렇습니다. 땅의 주인이란 것이 어떻게 생겨났습니까? 힘과 강제에 의해 만들어진 분할에 의한 것입니다. 최근 인도태생의 유명한 경제학자가 동시에 두 곳(일본, 한국)의 초청을 받았습니다. 초청 비용은 12배 차이가 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가 주창한 진정한 경제원리를 몸소 실천하기 위해 한국으로 올 것이라는 결단(Fine.)을 내렸습니다. 진정 우리가 가야할 곳은 어디일까요? 자신의 만족, 부유함, 쾌락이 아닌 함께 사는 사회, 진정한 참터를 꿈꾸는 것입니다. 사(私)는 사(邪)이어서 갈곳이 사(死)라는 어느 잡지의 글과 같이 우리는 진정 온전한 하나님의 공(公)을 공(共)함으로 자신을 공(空)하는 심령이 되어야 하겠습니다.(마5:3) 최근 MS 사의 W2000과 Linux와의 싸움도 이러한 사(私)의 지나친 욕심에 대한 공(公)의 반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천국의 비유에 대한 주님의 말씀을 깊이 상고함으로써 믿음의 길을 찾아가는 천로역정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빌3:19-20)
2. 지혜로운 천국의 백성은 세상의 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원리를 존중한다. 권력이동의 저자 앨빈 토플러는 권력의 원천으로서 힘과 돈과 지식이라는 세 요소를 강조하면서 미래는 지식에 의존하게 된다고 강조한다. 자본주의의 모든 미래는 바로 이러한 세 가지 원리에 의해 지배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세계는 이러한 지식의 네트워크에 의해 움직여진다. 이러한 네트워크는 한 개인에 의해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라 진정 하나님의 힘을 믿고 용기를 내어 주님의 사역에 헌신하는 공적인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골1:28-29) 세기말의 종교적 부흥은 하나님의 원리에 대한 재고를 필요로 한다. 모든 것이 인간적인 욕구에 따라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라 천국의 원리를 받아들이고 공적인 목표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에 의해 함께 나누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3. 영적인 하나님의 자녀는 분노와 불평이 아니라 주의 은혜에 감사가 넘친다. 시리아의 전투기가 이스라엘 공군에 의해 80여대가 폭격당하자 소련의 군사당국자들은 일제히 위염이 걸렸다는 말이 있다. 분노의 결과는 고통이요, 타인에 대한 반감뿐이다. 이러한 것은 건강에 전혀 도움이 안될 뿐만 아니라 자신을 해치는 일이다. 포도원주인과 일꾼이 정한 삯을 받는 것(데나리온, 은화)은 당연한데 타인에 시간 관계없이 동일하게 주어지는 품삯에 대해 공평치 못함을 불평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는 시간의 차이에 따라 더 많은 것을 얻는 파트타임 노동자가 아니라 주님의 일에 전적으로 헌신하는 자에게 동일한 은혜를 수혜받는 노동자인 것이다.(고전15:10) 이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이지 우리가 시간 대 비용의 차이를 두지 않는 주인에 대해 비판할 권리가 없다.
4.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믿음을 통하여 이해하는 것이다. 신앙은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의 원리를 이해하게 하는 통로이다. 하나님의 선하심,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부르심을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파악해야 한다. 인간의 가치관 판단 기준으로 주님의 광대하고 심오한 천국의 원리를 심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롬1:21-25) 인생의 각 시기에 다가오시는 주님의 따스한 위로와 은총의 언어를 깨달아야 한다. 그리하여 주님을 나라를 위하여 온전히 섬기는 자에게 그 소산을 주시는 것이다.(신30:9-14)

♧ 주일 공동 기도 ♧

우리의 일상 속에 함께 계신 하나님,
무더웠던 여름의 뜨거운 태양을 쉬게 하시고, 잔잔한 가을비로 우리의 마음을 평온케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가을, 믿음과 마음의 결실도 풍성한 계절이 되기를 소원하오니 주의 은혜로운 말씀으로 풍성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말씀과 율례를 따르기보다는 내 원칙과 세상의 원리에 충실했던 과거의 모습을 회개하오니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공평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어리석은 분노와 욕심으로 가득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볼 때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참으로 먼저 된 자로서의 참믿음을 온전히 지켜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저희들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고통과 절망가운데 있는 모든 지구촌의 백성들에게 생명의 은총과 소망을 허락하시고, 말씀을 온전히 지켜 승리하는 인생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구원의 기쁨을 허락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명상의 시간 : 인생의 조건들

▶ 인생에 필요한 조건을 두 배로 구비하라. 그러면 생활 역시 두배의 가치를 지닐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일도 그 일에만 매달리거나 국한 시켜서는 안된다. 사람은 모든 것을, 특히 생활방식, 좋은의지, 만족 등은 곱절로 가져야 한다. 영원한 달도 그 모습을 바꾸듯, 인간의 연약한 자비심에 의존해야 하는 인생 속에서 사물의 모습은 얼마나 자주 바뀌는가. 그러니 이처럼 깨어지기 쉬운 인생을 잘 이끌어가기 위해서 우리는 사는데 필요한 것을 곱절로 저장해야 한다. 자연이 우리에게 신체의 중요한 부분인 팔과 다리를 둘 씩 주었듯이, 우리는 우리가 인생에서 의지하는 그것을 곱절로 갖추는 기술을 가져야 한다.
◀ 뻔뻔함이 아닌 지혜로 자기 자리를 마련하라. 높은 명망을 얻는 참된 길은 업적을 쌓는 것이다. 근면이야말로 진정한 가치의 근원이다. 이를 통해서만 가장 빨리 명성을 얻는다. 흠잡을 데가 없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또 애만 쓰고 추진해 봐야 가치가 없다. 그렇게 달성한 명망은 흙탕물을 맞아 구역질이 난다.

- 세상을 보는 지혜, 발타자르 그라시안, 둥지

통권 제 8 권 39호
설교일자: 1999. 9. 26.

므리바의 생수(출17:1-7)

1.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돈이나 음식 등을 말할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것 중에 하나는 바로 물이다. 목마른 중에 있는 사람들이 마시는 물, 특히 밭을 일구고 돌아와 마루에 걸터앉아 마시는 물, 고된 훈련을 마치고 마시는 물 한잔, 사막에서 찾아낸 오아시스의 물 한잔은 아마 몸뿐만 아니라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시원하게 하는 생수일 것이다.(시42:1) 물은 생명을 풍요하게 하고 정화작용을 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또한 물은 어느 형태도 받아들이는 포용성을 가지고 있다. 액체로, 기체로 고체로, 어느 틀에도 자기 자신을 맞춘다.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물의 깊이를 얼마나 체험하면서 하나님께 물을 달라고, 물이 없어서 죽는다고 방성대곡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중요한 사실은 물이 없어서 죽는 것이 아니라 물을 찾아 땅을 파지 않아서 죽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므리바의 벌판에 서서 주님을 향해 외쳐야 한다. 목마른 영혼을 위로해 주시려면 "생수를 주시옵소서."(사55:1)
2. 현대인들은 출애굽의 이스라엘 민족처럼 생존의 욕구가 걸린 것도, 분노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한다. 하나님이 존재하시는가 안 하시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관심조차 없다. 그저 홍수나 터지고 지진에 매몰돼서 고통 당하는 백성들이나 "오! 하나님"을 찾아대는 것쯤으로 알고 있다. 하나님의 일식(日蝕) 시대를 맞이한 한국교회의 현실은 참으로 아담이 범죄 한 이후에 경험한 "해가 저무는 낙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의 존재 거부는 바로 혼란, 무질서(카오스)의 시작이다.(시10:4, 시14:1) 삶의 윤리적 가치도, 선과 악, 진리와 거짓이 모두 의미없는 것이 된다. 이스라엘 백성의 요구는 먼저 생존에 대한 욕구였고, 지도력에 대한 도전이었으며, 영적 가치에 대한 몰이해에 근거한 것이다. 삶의 근거나 불신앙도 어떻게 보면 우리가 가진 물질에 대한 자신감, 불편함 없는 안락한 삶에 대한 만족에 기원한다.(눅12:19-21) 이러한 상황이 깨진 이스라엘 공동체의 현실은 답답함과 분노 그리고 원망 밖에는 남은 것이 없다. 이스라엘의 방법은 결국 원망과 분노의 절규였다. 그러나 그 결실은 모세의 간구를 통해 변화된다. 반석을 치는 행위 이는 곧 그리스도의 고난의 상징이며, 영생수를 주시려는 반석되신 그리스도의 응답이었다.
3. 신약성서에 나오는 우물가의 여인(요4:5-15)처럼 모든 것이 포기된 상태, 될대로 되라는 삶의 현실에서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그의 인생이 변화되었다. 믿음은 삶을 변화시켰다. 생수는 영적 갈등의 해소이며, 인생 태도의 근본적인 변화이다.(요7:38) 위기가 믿음을 탄생시키는 것인가? 아브라함의 순종하는 믿음, 언제 어디서나 변함없는 다니엘의 멋진 신앙, 죽음 앞에서 어찌하오리까하시며 답답한 마음을 고백하시며 하나님의 역사를 완성하신 주님, "갈등과 고난의 믿음"보다 "굳건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무엇이 왜 필요한지를 깨달아야 한다. 예수께서 제자들은 삼년 동안 먹이시고, 가르치시고, 훈련시켰건만 유대병정의 칼 앞에 모두 도망치고 말았다. 인간적 비겁함도 나약함도 믿음이 연약한 결과였다. "아직도 깨달음이 없느냐?"(마15:16)는 주님의 질문은 우리의 삶 가운데 계속되는 의미있는 질문이다. 우리는 주님을 만나야 한다. 인간의 상식과 절차를 뛰어넘은 영적인 신비와 은혜를 체험해야 한다. M. 부버의 말대로 "만남의 진실 없이 모든 형상은 놀음이요 기만"일 수밖에 없다.(약1:22) 우리도 생명수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셔야 한다.

♧ 주일 공동 기도 ♧

우리의 영원한 기쁨이 되시는 주님,
주님께 우리를 생명과 소망의 길로 인도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시간 온전히 순종하는 마음으로 나아왔사오니 은혜의 말씀과 사랑의 권능으로 우리들을 인도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죄와 허물로 어리석은 일을 자초하는 저희들을 용서하여 주시고, 날마다 회개하며 하늘의 은총을 되새길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시니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긍휼처럼 우리로 하여금 남을 긍휼히 여길 줄 아는 지혜를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고난을 기회로 삼게 하시고, 영혼의 목마름은 끝없이 기도하라는 주님의 요청으로 믿고 인내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끝없는 지진과 환난의 소식으로 인해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고, 오히려 주님 안에서 더욱 굳건한 믿음을 지키며 영생수를 흡족히 마시는 삶이 되도록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권능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명상의 시간 : 오라 생명수를 마시라

사막에서 대상들이 물이 전부 바닥 나고 모두 갈증이 나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을 째 그들은 봉이 하나인 민첩한 낙타 한 마리를 앞으로 내보내고그 낙타를 탄 사람은 달릴 수 있는 한 가장 빠르게 달려간다. 그 낙타가 멀어지면 첫번째 낙타를 볼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하면서 두변째 낙타를 내 보낸다. 그리고 그 두 낙타가 거의 보이지 않게될 때 세번째 낙타를 가게 하고 그러고 나서 계속해서 또 다른 낙타를 내보낸다. 낙타는 본능적으로 물을 찾아갈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속력을 내서 사막을 건넌다.
그래서 낙타를 탄 첫번째 사람이 물에 도착하게 되면, 물이 그 곳에 있다는 확인을 하고서 낙타 등에 올라타고서 "오라!"라고 소리친다. 그러면 그의 뒤에서 가장 가까이 따라오던 사람이 그 소리를 듣고 " 오라!"라고 말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연이어 오는 사람들이 "오라!" 라고 소리치고 결국에는 "오라!"라는 소리가 전사막에 울려 퍼지게 되고 대상들은 모두 물을 마실 수 있게 된다.
성령과 신부가 생명수를 발견하고서 말한다. "오라! 들은 자는 오라 라고 말하라. 그리고 누가 들었던지 둘은 자는 누구나 와서 생명수를 값없이 마시라."

(찰스 스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