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권 제 8 권 31호

설교일자: 1999. 8. 1.

아름다운 근심(롬9:1-4)

1. 인생 길을 걷는 동안 우리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습니다. 특별히 걱정거리나 염려가 없는 인생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염려란 마치 흔들의자와 같은 것이기에 참되게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염려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염려는 변화시킬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우리의 단순한 반응에 불과하지만, 신앙이란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들의 행동인 것입니다. 성경에 150회나 근심이란 말이 나오고, 염려라는 말은 60회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 근심이나 염려의 내용이 갖가지인데, 인간적인 고뇌, 분주한 일, 세상에 대한 욕심, 거룩한 사역에 대한 것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또한 성령의 근심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이요(엡4:30), 바울의 근심은 민족과 공동체의 구원을 위한 아름다운 근심이었습니다.(롬9:1)

2. 의로운 결단을 위해 근심하는 성도가 됩시다. 복음서에 보면 한 청년은 자신의 재산에 대한 염려로 인해 그리스도를 떠나갔으며(막10:22), 헤롯왕은 자존심 때문에 민족의 선지자, 세례요한의 목숨을 달라는 딸의 요청을 들어주었습니다.(마14:9) 염려와 근심이 많아지면 올바른 판단력을 잃게 됩니다.(눅21:34) 그러므로 성도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와 간구하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빌4:6) 염려보다는 보다 선하고, 진실하며, 아름다운 일이 무엇인지를 주를 위해, 사회를 위해, 가정을 위해 고민하고, 연구하는 의지를 불태울 때 이러한 근심거리는 모두 물러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미래는 주님의 의로운 결실을 맺는 삶이 될 것입니다.(사61:3) 세상의 즐거움으로 인해 근심을 잃어버린다면 좋겠지만 영원한 즐거움은 믿음으로 주님을 만날 때 이루어집니다.

3. 분주한 세상 욕심에서 떠나 한가한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복음서에 보면 마르다는 많은 일거리 때문에 그녀의 마음이 혼란스러웠으나, 마리아는 말씀을 듣고 진리를 따라 사는 법을 선택하였습니다.(눅10:41)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진정한 평화(요14:27)는 우리의 마음이 어느 곳을 향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끝없는 걱정과 근심보다는 주님께 모든 염려를 내어 맡길 때 승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민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었으나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때 위대한 부활의 역사가 드러난 것입니다. 참된 근심을 주님께 고백하면 우리로 하여금 소원의 항구로 인도해 주십니다.(시107:28-30) 한가함이란 바로 마음의 여유를 되찾는 것입니다. 마음의 여유를 통해 인간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를 위해 봉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갈5:13)

4. 거룩한 교제를 위해 심도있고 아름다운 근심을 해야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것은 깊은 명상입니다. 우리에게 남겨진 소중한 믿음의 저작은 '그리스도를 본받아'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삶의 자세, 주의 성례에 예비하는 성도의 마음가짐이 잘 드러난 저서입니다. 깊은 명상과 삶에 대한 사유를 통해 하나님의 뜻에 관심할 때,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룹니다.(고후7:1) 바울은 자신을 제물로 바칠지라도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을 소원했으며(빌2:17-18), 골육을 위해서라면 그리스도의 저주까지도 감당할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롬9:3) 이러한 아름다운 가정을 위한 믿음의 소원은 바로 신실한 바울의 마음이었습니다. 주의 성도들은 이러한 소중한 마음씨를 서로 나눌 때에 더 아름다운 신앙을 소유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요일1:3-4)

♧ 주일 공동 기도 ♧

우리의 마음을 헤아리시는 주 하나님,

이글거리는 태양과 폭포수 같은 장마를 통해 착잡한 영혼의 미래를 밝히시고, 우리의 메마른 심령을 더욱 푸르게 하시니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 가운데 풍성한 믿음을 더하여 주셔서 영원히 주님을 찬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생활 태도가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지켜 주시옵소서. 생의 혼돈 앞에서 절망하거나 염려하기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열린 귀와 주님께 의탁할 줄 아는 지혜 또한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사악한 자들의 잘됨, 개인의 야망을 이루고자 남을 괴롭히는 불의한 모습, 안락함을 추구하는 헛된 생각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를 도와주시며, 영원한 참터를 꿈꾸는 믿음과 사랑, 그리고 소망의 일꾼이 되도록 능력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베풀어주시는 구원의 역사와 가르침에 순종하게 하시며, 세속의 수풀에서 풍파를 이기며 피어나는 무궁화와 같이 고귀한 삶이 되어, 고난가운데 힘겨워 하는 나약한 이들에게 주님의 평화를 나누는 삶이 되도록 도와주소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명상의 시간 : 대들보에 금이 간 것에 근심한 아버지

어느 효심이 두터운 아들이 그 아버지를 위하여 거처할 사랑채를 지어드렸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누워서 쳐다보니 대들보에 금이 가 있었다. 이를 본 아버지는 '쯧쯧'혀를 차면서 근심하기를 마지아니하였다. 아들이 "생나무가 마르면서 금간 것이니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라고 아버지를 달래어도 막무가내로 근심을 계속하셨다.

아들은 이를 보다못해 아버지를 잠시 여행을 떠나게 하고 그 동안에 대들보를 갈아치웠다. 아들은 기뻐하며 만족해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와서 이를 보고 별반 기뻐하지도 않고 그 뒤 근심거리가 없어진 연고로 무료히 지내다가, 얼마 안 가서 죽고 말았다. 차라리 금이 간 대들보가 그대로 있어서 근심을 계속했더라면, 아버지가 오래 살으셨을지 모르겠다.

한문 숙어에 기우(杞憂)란 말이 있다.

옛날 기 나라에 하늘이 무너진다고 근심하는 자가 있었다 한다. 이를 가리켜 쓸데없는 근심을 두고 기우라고 이르는 말이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14:27)

통권 제 8 권 32호

설교일자: 1999. 8. 8.

새 사람을 입으라(골3:9-15)

1.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새로운 사고방식과 지식과 활동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끔 무의식적으로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과도 같습니다. 위선과 허위와 거짓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면서 옛 모습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짓이란 진리를 거슬리는 것입니다. 진리를 따르지 않고 거역하며 살아가는 삶은 힘들고 답답한 일입니다.(롬2:8) 마치 흐르는 물을 다시 높은 언덕위로 올려 보내려고 하거나 폭포수를 거슬려 올라가는 물고기의 삶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도란 주님의 형상을 따라 살아가도록 영적인 변화와 삶의 양식을 거룩하게 변화하여 그리스도의 은총 가운데 거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롬8:29) 새 옷, 새 모습을 갖춘 사람은 새 행동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처음에는 불편하고 어려운 것 같지만 그러한 새로운 삶을 부지런히 살아가면 곧 익숙해지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벧후3:11-12)

2. 새 사람이 되기 위해 맨 먼저 해야할 일은 거짓을 버리고 사고방식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롬12:2) 작은 거짓은 엄청난 피해를 가져오고, 작은 불의는 무서운 저주를 탄생시키고 맙니다. 아담의 거짓된 행동은 바로 원죄라는 인간 심성의 사악한 의식을 만들었으며, 아간의 도적질은 영적 승리에서 패배하였고, 불의한 이익을 탐내던 유다의 결과는 참혹한 회의주의였으며,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비애는 믿음의 결실없는 헌신이었습니다. 잘못 만들어진 가방을 판 아버지의 이야기와 같이 거짓과 불의의 피해는 바로 우리를 향한 독화살일 뿐입니다.(롬6:17-18) 경기 북부지역의 엄청난 수재(水災)는 말로는 주민을 위한 사업을 한다고 떠들었지만 적당히 일을 처리한 결과였습니다. 거짓은 고통을 낳습니다.

3. 또한 해원상생의 삶입니다. 한(恨)을 풀거나 마음속에 품고있는 악의를 벗어버리지 않고는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거할 수 없습니다.(약1:21) 하나님은 악한자의 기도나 분을 품고 있는 자의 소원은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지은 사소한 것도 용서하지 못하면서 죽을 죄에 빠진 자신만을 위해 어떻게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구할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해지기 전에 분을 제거하고 화해하라고 함으로써 자신의 영적인 건강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엡4:26-27) 주님의 자비로 옷입고 주님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사랑으로 용서하는 것만이 모든 일에 있어서 주님에게 대하듯 하는 삶입니다. 용서는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자신의 상처와 마음의 고통을 자신의 십자가로 받아들이면서 한없는 주님의 사랑으로 대할 때, 상대방을 용서할 수 있고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4. 감사를 드리는 삶은 평안한 마음에서 생기듯 먼저 주님의 평화로 가득해야 합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란 문귀 그대로 집안의 평화를 먼저 만드는 일이 만사를 해결하는 지름길인 것입니다.(롬15:6) 평안한 자는 모든 일을 즐거움으로 대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답답하고 힘들 때, 모든 것은 제대로 보이지가 않습니다.(고후3:14-15) 마음에 덧입혀진 색안경이 외부의 세상을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바라보게 되고, 가면을 쓰고 이 세상을 대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나라는 가면이 없고, 색안경이 없는 참터입니다. 평화가 마음을 주장하지 못할 때 시기, 질투, 다툼, 욕심이 일어나고, 아름답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모든 일에 주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리스도로 옷입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엡6:6-7) 새 사람이란 주님의 은혜 안에서 만들어져 가는 새로운 인간성입니다.

♧ 주일 공동 기도 ♧

자비로우신 하나님,

오늘의 삶에 이르도록 채워주시고 인도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오직 주님의 나라를 우러러보며, 거룩한 이상과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능력을 더하여 주시며 빛나는 태양과 같이 선한 능력이 충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흔들리는 터전에서 모든 것이 쓸려 내려간다 해도 우리의 믿음은 오히려 굳게 서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진리의 빛을 따라가면서 어렵고 힘들더라도 주님께서 걸어가신 그 고난과 사랑의 길을 묵상하면서 더욱 힘차게 주님의 증인으로 경건과 고상한 덕을 쌓아가도록 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진실과 성실함으로 벗을 삼으며, 사랑과 평화로 우리의 삶을 가꾸도록 성령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씨부리는 농부의 소망과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 항해사와 같이 주님을 향한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를 잊지 않고 주님의 거룩한 사역에 동참하는 저희들이 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의 인도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명상의 시간 : 도시락 가방

학교 앞에서 도시락 가방을 파는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방 중에는 겉은 멀쩡해도 가죽이 낡았거나 끈이 잘못 만들어져서 쉽게 망가지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아저씨는 그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학생들에게 팔았습니다.

하루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의 생일이 되어 아저씨는 일찍 장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들의 친구들이 와서 생일 잔치를 벌렸는데 아저씨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들의 생일선물로 한 친구가 준 것은 바로 그 아저씨가 팔았던 도시락 가방이었던 것입니다. 다음 날 아저씨는 가게에 있는 가방 중에서 불량품을 모두 새 것으로 바꾸고 다시는 불량품을 속여 팔지 않았습니다.

너희가 저마다 제 이웃에게 무엇을 팔거나, 또는 이웃에게서 무엇을 살 때에는 부당하게 이익을 남겨서는 안된다. (레위기 25:14)

거짓말을 하면 결국 그 피해는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시편에서 거짓말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 서지도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싫어하십니다.

모든 일에 정직하세요. 거짓말로 자신의 이익을 구하기보다는 정직함으로 조금 손해보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통권 제 8 권 33호

설교일자: 1999. 8. 15.

진정한 화해(창45:1-15)

1. 1904년 3월13일, 칠레와 아르헨티나는 국경에 그리스도상을 새우면서 화해를 다짐한 일이 있었다. 이는 한 카톨릭 신부가 1900년 부활절에 사해형제주의에 입각한 평화를 촉구하면서 몇년후 전쟁무기로 그리스도의 상을 세워 평화를 언약한 사건이다. 개인과 개인의 화해도 힘이 들지만 그리스도가 함께 하실 때 민족간의 평화가 성취된 것이다. 화해란 무엇인가? 한문의 의미로는 서로 밥을 나눠먹기 위해(和) 마음을 풀고(解) 하나가 되는 것이며, 영어로는 reconciliation 즉 악한 마음을 제거하고, 친구의 감정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인들은 선한 감정보다는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위기와 피해의식으로 남을 대하는 경우가 있다. 마음이 열리지 않고는 아무 것도 열리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진정한 성도들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영적 신호를 분명히 살펴 선한 인생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개와 고양이의 다툼은 다른 신호방식 때문이라고 하는데, 타인의 삶의 방식이나 문화를 비방하기보다 서로 통용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과 관용정신을 가져야 한다.

2. 화해의 기본 동기는 마음에서 출발해야 합니다.(벧전3:4) 상거래방식을 보면 두 가지가 있는데, 입금 우선 후송달 혹은 물품인수후 송금 방식입니다. 어느 것이 더 신뢰를 쌓을 수 있는가? 이와같이 믿지 못하면 불가능한 것이 오늘의 상거래입니다.(고전3:18) 스페인의 프랑코 총통은 유서에서 자신으로 인해 어려움을 당한 자들에게 용서를 빌었습니다. 믿음의 길은 마지막 순간에 더 분명해집니다. 마음이 열리면 용서가 되고, 깊은 정이 솟아 나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골3:13-14) 요셉은 그의 형제들이 부모에 대한 효성과 요셉의 동생 베냐민에 대한 신실한 형제애를 확인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깊은 정을 드러내게 된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웃는 낯에 침 뱉으랴"는 말과 같이 신실한 마음으로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우선하여 자신의 마음을 풀고 서로를 신뢰해야 합니다.

3. 화해는 문제를 덮어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상을 고백하는 것입니다.(요일1:9-10) 모든 문제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해석하고 고쳐나갈 때 진정한 화해를 이룰 수 있습니다. 요셉의 삶은 불의한 모습을 고백하고, 닫혔던 마음을 풀고, 오히려 위로하고, 은혜로운 의미로 재해석함으로써 형제들에 대한 신뢰를 회복했습니다.(고후1:12 ) 분노와 죄책감의 만남은 포장되어서는 안됩니다.(고후7:9) 포장은 화려하지만 속은 썩어 문드러져 악취가 나고 말 것입니다. 인도네시아의 한 부족처럼 상대방과 친하다가 죽이면 영웅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타부족과 화해할 때는 멋지게 꾸민 '화해의 아이'를 보내어 화친을 한다고 합니다. 내적인 마음을 표시하고, 드러냄으로서 화해가 이루어집니다.(엡1:7-10)

4. 진정한 화해는 실천되어야 합니다. 최근 평양에서 열린 남북노동자축구대회(13-14)는 화해를 위한 실천의 한 모습입니다. 통일관계 당국자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북한을 화해로 이끌어 내고, 조금 손해보더라도 북한과의 관계에 적극적으로 나서면 좋을 걸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한 귀순외교관의 말에 의하면 북한사람들도 남북한 사정에 대해 웬만한 건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좀 더 적극적으로 대하여 평화통일을 이끌어 내어 서로 손잡고 기쁘게 살고, 오갈 수 있는 시대가 속히 오도록 좋은 정책을 지지하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요셉의 진실은 울음과 얼싸 안으며 몸으로 표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화해하신 것처럼 평화를 조성해야 하겠습니다.(마5:23-24)

♧ 주일 공동 기도 ♧

평화와 일치의 주 하나님,

오늘 남과 북 그리고 세계의 모든 교회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드리는 이 기도를 들어주소서.

창조의 주 하나님! 하나로 지음받은 우리민족이 갈라져 반세기 넘어 하나된 모습을 회복하지 못한 죄를 용서하소서. 분단과 질곡에서 고통당하는 우리민족을 긍휼히 여기사 이제는 자주적인 평화통일의 새 나라로 인도하소서.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이시여!

남과 북의 교회를 축복하소서. 우리의 헌신과 사랑과 신실함이 모여서 평화와 일치를 온 땅에 펼치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하나되게 하시는 성령이시여!

미움과 불신을 떨쳐내고 사랑과 신뢰가 가득찬 7천만 겨레되게 하소서.

더 이상의 단절도, 더 이상의 막힘도 걷어내고

공존과 번영, 평화와 통일의 새역사를 이루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명상의 시간 : 인터넷 시대의 돌입

인터넷이 정보의 바다, 정보검색용 도구에서 진일보하여 비즈니스의 새로운 중심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인터넷은 서적, 화장품, 소프트웨어 등 일상적인 상품판매는 물론 금융, 주식거래, 경매, 오락 등 산업전반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다. 미국의 예를 보면 전체 주식거래 중 20%가 인터넷을 통해 이뤄지고 있으며, 온라인 경매는 직거래의 60%이상을 차지한다. 이에 따라 세계 인터넷 비즈니스 시장규모는 96년 5-6억 달러에서 98년 45억 달러로 급성장했으며, 2002년까지 연평균 약 180%씩 성장할 전망이다.

국내도 예외는 아니어서 인터넷 혁명의 파고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99년 4월 기준 인터넷 이용자 수가 400만명을 넘었는데, 이는 최근 3년 동안의 중가 추이를 고려할 때 약 10배나 늘어난 것이다. 특히 올해 들어 24/7 미디어, 라이코스 등 초국적 인터넷 기업들이 국내시장에 진출하고 있어 우리 나라도 글로벌 인터넷 비즈니스의 영향권에 들어섰다. 국내 인터넷 비즈니스 시장은 매년 2배 이상의 초고속 성장을 하고 있는 가운데 2005년이면 약 2조원에 달하는 시장규모를 가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인터넷은 제2의 산업혁명이라고 불리울 만큼 영향력이 막대하다. 인턴넷 이용자가 5,000만명을 돌파하는데 걸린 시간이 4년으로 라디오(38년), TV(13년), PC(16년) 등과는 비교가 안된다. 특히 98년 미국상무부가 발간한 The Emerging Digital Economy 보고서는 "인터넷을 21세기 산업의 원동력"이라고 지칭할 정도다. 이것은 곧 향후의 산업지도와 기업간 경쟁방식이 인터넷에 의해 근본적인 변화를 맞게 될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노재범, 인터넷이 그리는 21세기 사업지도((comdex/korea 99, preview)일부발췌

통권 제 8 권 34호

설교일자: 1999. 8. 22.

지혜로운 믿음(롬12:1-8)

1. 사람의 지혜는 모아놓을수록 무궁무진하다. 즉 지혜는 오랫동안 결집된 경험의 산물인 것이다. 그러나 그 지혜는 영원한 것일 수 없다.(잠12:19) 사람과 자연의 미래는 예측할 수는 있으나 정확한 것일 수 없다.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것은 그 징조가 나타나기 때문이다.(마16:3) 얼마전 장마가 지나갔다는 기상대의 예보와는 달리 엄청난 폭우로 경기북부지역이 홍수가 났고, 8.17일 새벽, 터키의 지진으로 오만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미진(微震)이 코스타리카, 미국, 중국, 그리스에도 연이어 발생했다. 사람의 지혜는 하나님 앞에서 보잘 것 없고 무의미한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지혜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야 한다.(호6:3) 헛된 목표나 꿈은 파멸의 길에 이르지만 참된 소망은 영원한 나라로 우리를 이끌어 가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귀영화보다 참마음으로 지혜를 구하는 솔로몬의 믿음이다.(왕상3:11-13)

2. 먼저, 하나님 안에서 총체적인 변화와 분별력이 필요하다. 위로부터 오는 지혜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와 명상, 올바른 판단과 분별력을 통해서 나타난다.(약3:17-18) 이러한 능력은 내 안에서나 타인에게서가 아니라 위로부터 오는 능력인 것이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자신의 이름이나 능력이 아니라 위로부터 오는 능력과 지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눅24:49) 절대성이란 이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다. 절대라는 가치를 하나님께 돌리려는 지혜로운 학자들의 지식을 넘어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시97:9) 하나님을 알 때 지혜를 얻게 되고, 그 지혜를 따라 자신을 영적인 인간으로 변화시켜 나아가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몸과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해 거룩한 예배를 드리라고 요청한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영지주의자와 같이 마음과 생각으로는 주님을 섬기고, 행동은 너무 멀 때가 많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다. 통전적인 믿음과 변화가 있어야 하겠다.(히10:22)

3. 믿음의 지혜를 따라 마땅한 생각을 품어야 한다. 사람은 사유의 존재이다. 생각이 없다면 아마도 정신적인 문제가 발생한 상태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선한 생각은 선한 결과를 낳고, 악한 생각은 악한 결과를 낳을 수 있지만 인생이란 그렇게 생각한대로 되지는 않는다. 사람의 계획을 하나님은 다르게 사용하시기도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구약의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다.(잠16:9)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과 활동이 하나님의 계획과 삶의 목적과 부합되고, 참되고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지 심도 있게 생각해야 한다.(히3:1) 지나치거나 헛되거나 불의한 생각은 하나님의 양심법정 앞에 놓이게 될 것이다. 모든 일에 앞서 주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서 주님에게 맡기는 심정으로 살아가야 한다.(마6:33)

4. 마지막으로, 공동체 안에서 자기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후4:1-2)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올바로 사용하는 것과 그 대상을 향한 성실함과 근면 그리고 기쁨으로 행하는 사랑이야말로 덕을 끼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놓인 자리를 이탈할 때, 그 관계성은 깨어지고, 서로를 불신하게 되며 나아가서 죽음의 자리로 몰아넣게 된다. 대교나 백화점의 붕괴 혹은 매년 되풀이되는 홍수와 같은 인재(人災)가 우리의 현실이다. 최근 기독교신문에 어떤 목사는 오랫동안 한국교회의 갱신을 외쳐왔건만 변화된 것은 너무도 적은 실정이다. 우리 자신의 역할에 먼저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며 신앙의 굳은 의지를 세워야 할 것이다.(빌2:30)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지만, 실천함으로 완전에 이르는 것이다.

♧ 주일 공동 기도 ♧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

무더웠던 한여름의 더위를 물리치시고 상쾌한 바람을 허락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어두운 길을 희망의 빛으로 밝혀주시고,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를 잔잔케 하시니 영광의 노래로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놀라운 계획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때로는 회피하고, 절망하며, 비난하기도 하였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믿음으로 살아가는 일이 힘겨운 세상을 극복하는 지혜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삶과 타인에게 유익을 끼치며, 희망과 기쁨을 줄 수 있는 삶이 되도록 우리를 붙잡아 주시옵소서. 마음에서 마음으로 통하는 지혜와 사랑이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비로운신 주님, 수재와 지진으로 고통 당하는 사람들에게 자비와 도움의 손길을 베풀어주시고, 받은 사랑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좋은 세계가 되도록 힘쓰는 저희들로 삼아 주시옵소서.

온 민족의 희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명상의 시간 : 잃어버린 편지

에드가 앨런 포의 단편 소설 중에 "잃어버린 편지"라는 것이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떤 중요한 편지가 분실되어 경찰에 신고되었다. 그리고 곧 그 편지가 있는 집이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경찰은 그 집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하였으나 끝내 찾지 못한다. 그러다가 탐정이 가장 뻔한 곳에서 그 편지를 찾아낸다. 그곳은 편지를 보관해 두는 벽걸이용 편지함이었다. 즉 도적은 사람들은 흔히 눈앞에 그대로 나타나 보이는 것은 오히려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의 구원은 믿음으로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은 신약 성경을 읽어 본 사람은 누구나 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이것이 너무나 분명한 일이기 때문에 깨닫지 못하고 여기 저기 딴 방향에 가서 찾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 자기의 능력이나 노력으로 구원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구원은 다만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구원은 다만 신앙이란 손을 뻗침으로만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너무도 분명한 사실을 사람들은 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통권 제 8 권 35호

설교일자: 1999. 8. 29.

참선의 길(眞善之道)(롬12:9-21)

1. 요즘 사람들은 선한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을 거리는 경향이 있다. 선한 것이란 거짓이 없고, 티없는 순수한 마음씨나 해맑은 태도임에도 불구하고 좀 손해보는 사람, 무언가 좀 모자라는 듯한 분위기를 느낀다고 말한다.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은 강경한 사람, 못된 사람으로 취급당하고, 선과 사랑을 말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로 평가받는 등 세상의 가치혼란은 극에 달하고 있다. 자기만족이나 허상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믿음은 교활하고, 잰걸음을 치고, 어물쩍 넘기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을 바라보고 따라가는 사람들의 태도에서 발견된다. 사도 바울은 성도의 생활방식을 참선의 길로 제시하고 있다. "12사도의 교훈"에 의하면 생명과 죽음의 길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는가를 질문하지만 바울은 명확하게 선을 추구하는 삶을 제시하고 있다.

2. 지순한 선에 속한 자가 되어야 한다.(至純善屬) 선의 본질은 순수함에 있다. 그 순수함은 타인에 대한 진정한 사랑으로 나타난다. 그 사랑은 바로 하나님과 인간됨의 본질을 올바르게 이어주는 끈이다.(골3:12-14) 선에 속한 자는 선한 관계성을 맺고, 선한 결실을 맺는다. 그리스도는 바로 다정하신 분이셨다. 나약하고 소외당한 형제 자매들을 감싸주시고, 치유해 주셨다. 그리고 그 선한 마음은 열정적이고,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 간절함이 없는 선은 형식일 뿐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사랑에 대한 간절함과 이웃에 대한 진실한 사랑을 요청했다.(마22:37-40) 자신이 속한 편이 선인지 악인지, 사랑인지 미움인지, 정의인지 불의인지를 명확히 파악하고 이러한 사람들간의 연대를 통해 이 땅에 하루속히 주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야 할 사명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3. 지극한 선을 추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至極善望) 선을 추구하려하지만 혼자의 힘으로는 너무나 미약할 뿐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요, 자매됨을 확인하는 영적인 교제의 필요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한마음, 한뜻으로 주님을 섬길 때 이 세계는 좀더 희망이 넘쳐날 것이다.(벧전3:8-9) 선을 꿈꾸지 않고서는 선한 결실을 맺을 수 없다. 에서의 분노는 야곱의 고통가운데 봄눈 녹듯 사라졌고, 요셉의 분노는 하나님의 자비로 선하게 변화되었으며, 나오미의 슬픔은 룻과 보아스의 아름다운 만남으로 하나님 안에서 새롭게 변화되었다.(몬1:20)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세계를 포괄하는 확실한 것(히11:1)이라고 J. 몰트만은 말했다. 참된 성도는 이 세상을 아수라로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희망의 가능성이 잠재된 평화와 정의의 세계로 바라보면서 주님의 나라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벧후1:10-11)

4. 지고한 선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至高善行) 선은 결국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선은 곧 믿음이요, 실천인 것이다. 아무리 좋고 귀한 것이라 할지라도 사용되지 않으면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다. 참된 성도라면 장식품이기보다는 주님을 위해 자주 사용되는 토기그릇이어야 한다.(딤후2:20-21) 주님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으로 헌신할 때, 주님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귀한 성도가 되는 것이다. 악을 이기는 길은 추악한 것이 아니라 고상함으로 감싸 드려지는 선물이어야 한다. 어려움을 당하는 자와 함께 하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자의 요구를 넘치게 들어줌으로써 선으로 승리하는 것이다. 악을 행한 자가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지극한 선의 결정체가 되기를 기원한다.

♧ 주일 공동 기도 ♧

사랑의 근원되시는 주님,

우리의 삶가운데 찾아와 주셔서 새로운 희망과 선한 의지를 허락하시니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밝은 태양 빛이 가을의 풍요를 기약하는 것처럼 우리의 삶을 밝게 비쳐주시며 좋은 결실을 맺게 하여 주시옵소서.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분노에서 벗어나 주님의 평화와 자비를 옷입는 저희들이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고난 중에 즐거워하고, 두려움 가운데 찬양하며, 슬플 때 더욱 힘써 기도로 정진하는 주의 자녀가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그 지고한 선을 온전히 이루는 믿음의 성도가 되기를 원하오니 주께서 늘 권능의 손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고난당하는 민족에게는 희망을 허락하시고, 무질서한 이 시대에 하나님의 정의가 승리하는 능력을 나타내 주시옵소서. 잠자는 영혼을 흔들어 주의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는 저희들로 삼아 주시옵소서.

완전한 사랑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명상의 시간 : 선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당황하실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여름의 가뭄 가운데서 농부는 비를 내려 달라고 기도하는 반면, 휴가를 즐기려는 사람은 좋은 날씨를 달라고 기도한다. 겨울을 즐기는 사람은 겨울 내내라도 눈이 오길 바라지만, 방목을 하는 사람은 하루 빨리 기온이 높아져서 소떼를 먹을 수 있도록 눈이 녹기를 바란다. 하나님도 이 두 가지는 한꺼번에 들어주실 수 없다.

이따금씩 당신의 기도를 자세히 들어 보라. 이기적인 기도가 아닌가? 오늘 이 상황에서 주님께서 역사하셔야 합니다." "제 사업이 성공하게 해 주십시오." "승진 심사에서 제가 뽑힐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이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야고보는 우리의 계획, 우리의 목표, 우리의 소원보다. 훨씬 더 중요한 어떤 것 - 하나님의 뜻 - 에 대해 말한다. 그는 우리가 늘 "만일 주님의 뜻이라면"이라는 태도로 기도해야 한다고 상기시킨다.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 계획에 맞추려고 억지를 쓰지 말고, 오히려 우리의 뜻을 하나님의 계획에 맞추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유익하지 않은 어떤 것을 원하신 적이 있는가? 절대로 없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시다. 그분의 뜻은 언제나 선하시다. 왜냐하면 그 뜻이 그의 사랑하시는 아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고 있기 (엡3:11때문이다. 심지어 우리에게 해롭게 보이는 것도 우리의 유익을 위해 계획하신 것이다. 요셉에게 일어났던 그 모든 불행한 일들을 기억하는가?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유익을 위해 허락하셨다(창50:15-21). 엘리야 시대에 있었던 3년 가뭄을 가역하는가?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사용하셔서 갈멜산에서 백성들이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하셨다(왕상18잘). 탕자의 굶주림과 고독을 기억하는가? 그는 그것 때문에 자기 아버지에게 돌아왔다(눅15:11-32).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이와 같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해롭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유익하게 하시는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