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권 제 8 권 23호

설교일자: 1999. 6.6.

성도의 옷을 입자(롬13:8-14)

1. 예로부터 한국인의 옷 문화는 서양의 단추문화와는 달리 옷고름의 문화입니다. 옷고름은 서로가 어우러져 함께 의미를 만드는 문화로서 서로간의 조화를 지향하는 전통입니다. 그러나 서양의 전통으로 인해 한쪽이 득(得)이 있으면 다른 한쪽에 실(失)이 있어 균형을 맞추는 문화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원리는 결국 경쟁과 차이를 요구하지만 우리의 옷고름 문화는 서로를 아껴주고 기대하고 함께 나누는 문화입니다. 오늘 사는 우리의 마음자세는 이러한 옷고름의 문화를 재고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진정 입어야 할 옷은 외적이거나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 자아로 하여금 "온유하고 정숙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입도록 해야합니다.(벧전3:3-4) 우리의 잘못된 의식과 문화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데 있습니다.(약2:9)

2. 사랑의 옷을 입어 율법을 완성하는 삶을 살자.(롬13:10) 사랑과 믿음의 삶은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기초입니다. 진정한 승리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 좋은 가치나 도구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왕 사울은 골리앗으로 인해 근심하면서 그를 이기는 자에게 모든 것을 주기로 하겠다고 하였으나 이기는 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큰 창, 큰 투구, 값비싼 갑옷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갖고 있던 예전 그대로의 옷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삼상17:38-40) 가장 좋은 옷은 자신에게 가장 편한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가르침대로 사랑은 불의한 것을 이기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거룩한 믿음입니다.(갈5:5-6) 우리의 모든 일은 사랑으로 행해야 합니다.(고전16:14) 사랑없이 행하기에 타인에게 근심과 어려움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롬14:15)

3. 어두움의 일을 찢어버리고 빛된 삶의 살자.(엡5:8-9) 이스라엘의 왕 요시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옷을 찢고 통곡하며 이스라엘의 죄악의 근원인 불신앙과 우상숭배를 타파한 후, 여예언자 홀다에게 신하를 보내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 이러한 요시아의 신실함과 겸손함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심판을 면하게 되었다.(대하34:27) 오늘 우리는 진정 자신의 불신앙과 무지와 불의를 제거하기 위해 요시아 왕처럼 옷을 찢는 마음으로 사는가? 아니면 예수 앞에서 그의 자색 옷을 얻기 위해 제비뽑는 로마 병정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되돌아 보아야 한다.(요19:23-24) 어두움에 속한 자들은 낮의 일을 깨닫지 못한다.(살전5:5) 늘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원하시는 일,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이며,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묵상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4.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삶의 가치로 무장하는 삶을 살자.(벧전4:1) 진정한 삶과 영적인 가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아버지는 자녀에게 실수의 중요성을 가르치면서 못을 뺀 판자를 가리키며, 못자국이 남아 있는 것처럼 실수하면 그 상처가 있음을 가르쳤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은 세탁기와 같다. 더러워진 옷을 세제로 깨끗이 빨아 버린다. 더 이상 전에 있던 자국이나 때를 탓하지 않으신다. 이제 그리스도의 보혈로 자신이 용서받음과 같이 못자국을 세기보다는 주님의 마음에 일치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딛3;3-8) 주님은 우리의 의로움이 아니라 은혜를 힘입어 용납해 주신다.

주일 공동 기도

우리에게 귀한 생명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

우리에게 은혜와 진리를 따르게 하시고, 주님과 함께 평화의 동산을 거닐게 하시니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의 고뇌와 분주함을 헤아려 주시어 오직 평화와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시옵소서.

자만의 요새를 무너뜨리게 하시고, 불의의 옷을 벗게 하시며, 믿음에서 벗어난 행동을 성령의 불로 태우시며, 정결한 마음을 우리 안에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범죄로 얼룩진 세상, 미움과 질시로 가득한 세상에서 주님의 복음을 통하여 거룩한 빛을 드러내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실수를 용납하여 주시고, 진리로 온전케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가르침을 귀하게 여기며,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믿음과 자신감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한민족과 함께 하셔서 신뢰와 다정함으로 상종하며, 소망을 나누는 데에 부족함이 없는 미래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위에 진정한 평화를 허락하신 주님의 은총의 해가 우리 가운데 함께 하며 변함없이 비추어 주시옵소서.

평화의 인도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명상의 시간 : 소라게의 옷

바다에 가면 소라게가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소라게는 한 백여 종되는데 그 가운데서 어떤 것은 날 때부터 자기가 살 수 있는 껍데기를 가지고 나오는 소라게도 있고. 어떤 것은 날 때부터 자기 껍데기를 가지고 있지 못한 소라게가 있습니다. 그런데 집이 있어야 살 수 있기 때문에 집을 못 가진 놈은 자기 눈에 들면 아무 데나 들어가서 제 집처럼 삽니다. 기어 다니다가 빈 소라껍질 가운데 하나를 고른 다음에, 집게발을 벌려 그 소라껍데기 입구를 재어 봅니다. 재어 보고는 그 집이 자기 몸에 맞겠구나 하면 지체하지 않고 배부터 밀어 넣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삽니다. 살다가 나중에 소라가 몸이 커져 불편하게 되거나 살다가 좀 싫증이 나면 금방 껍데기를 획 벗어버리고 다른 소라 껍데기를 찾아 나섭니다. 마음에 드는 것이 생기면 들어가 살다가 싫으면 또 집어던집니다. 이것이 소라게의 생활 습성이라고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서 마음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사람은 소라게처럼 자주 자기 집을 바꾸는 버릇이 있습니다. 주일을 맞으면 주일에 뒤집어쓰고 갈 수 있는 껍데기, 다시 말해서 예수 믿는 사람 행세를 할 수 있는 껍데기가 있다는 말입니다. 주일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면 세상에서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껍데기가 또 필요합니다. 그러나 신자의 옷은 하나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옷, 그것뿐입니다. 그 옷을 입고 어디든지 다녀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육신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 현세적인 것보다 영원한 것, 자기 중심보다 하나님 중심으로 마음이 바뀌어야만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 영광 위해 살 수 있습니다.

통권 제 8 권 24호

설교일자: 1999. 6.13.

환경과 신앙(호2:16-23)

1. 최근 다이옥신 파동으로 말미암아 수입된 돼지고기를 비롯한 육류, 유제품 등이 판매 금지되고, 국산육류의 소비가 감소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어제, 오늘이 일이 아니라 걸핏하면 치르는 연례 행사처럼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직도 잊지 못하는 낙동강 페놀유출 사건, 우기에 버려지는 산업 폐수 등을 생각해 볼 때, 머지않아 하늘의 심판에 앞서 우리 자신에 의한 멸망이 더 먼저 다가 올 것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연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심히 아름다운"(창1:18) 가치를 부여해 주셨지만 이를 맡아 관리할 우리들이 너무나 안이하게 살아가서는 안되겠습니다. 특히 한반도 주변의 자연환경은 단지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점차 확산되어 전지구적인 미래의 자연의 악화로 이어져 갑니다. 사무직 근로자 한 명이 일년에 90톤의 종이를 버린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와 같이 자원이 적은 나라는 자원절약형 체제의 사회구조로 바뀌어 나가야 합니다. 점차 뜨거워지는 그릇 속의 개구리처럼 우리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환경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과 사람 사랑의 길을 발견해야 합니다.

2. 환경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만남을 요청합니다. 신앙은 교리교육을 통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통해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영과 만남을 통해 이루어 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바람처럼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고, 불처럼 임재하시기도 합니다. 폭풍가운데 말씀하시고, 풍랑가운데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무지개 공동체(창9:12-13)의 일원으로 부르시고, 생명의 해방자(눅4:18-19)로 우리를 인도하시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부름 앞에 겸손(humility)한 마음으로 나아가는 사람(human)입니다.(미6:8)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성도로서의 길을 제시받아 자신의 사명을 받아들이고, 이룰 수 있습니다.

3. 환경을 가꾸는 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지름길입니다. 신앙은 이념이나 기치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A.슈바이처 박사의 삶과 같이 생명 존중의 윤리적 사유가운데 이루어지는 실천이 필요합니다. 진정한 신앙의 목적은 자신의 영성 개발(Spiritual Development of the person)이 아니라 깊은 정(Sharing the Charity of Life)을 나누는 것입니다. 선한 목자로 오시는 그리스도의 삶은 양떼를 위한 희생과 봉사가 있었습니다. 양떼는 그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릅니다.(요10:14-16) 이러한 관계성을 통해 교회는 지어져 가고, 세계가 더욱 아름다워집니다. 신음하는 피조물을 위해 기도하고, 절제하는 삶은 단지 자신만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진실한 봉사요, 친교인 것입니다.

4. 환경을 살리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그 부름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성도의 당연한 일입니다.(엡4:1) 특정한 누군가에게 명하신 것처럼 자신은 그 선한 역할들 선포, 배움, 봉사, 나눔 등을 자신의 것으로 삼아 실천하는 것이 바로 이 지구적 윤리를 온전히 이루는 것입니다. 나의 생각, 나의 능력으로는 한계만 부딪힐 뿐입니다. 주님을 의지하는 것은 진정한 후원자를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청조사역은 우리를 통해 끊임없이 이루어져 나아갈 것입니다.

주일 공동 기도

아름다운 환경을 창조하신 하나님,

푸른 하늘과 맑은 물을 우리에게 허락하셔서 기쁨과 소망의 성산에 거하게 하시고 생명을 베풀어주시니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다할 수 없는 감격과 영적인 눈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바라보는 한 주간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피와 불의로 얼룩진 세상, 거짓과 횡포로 가득한 우리의 환경은 바로 우리의 죄악과 교만의 결과임을 고백합니다. 소수의 지배자가 세상을 등쳐먹는 전지구적 불의에 대항하며, 참터를 향한 거룩한 연대와 소망을 나누는 저희들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날마다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믿음으로 동참하며, 사람과 자연 앞에 부끄러울 것이 없는 생명의 가치를 온전케 하는 삶이 되도록 노력하고 헌신하는 무지개 공동체의 일원으로 삼아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자연이라는 영원한 유산을 함께 나누기 위해 절제하는 믿음과 모든 차별에서 벗어나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해 나가는 저희들이 되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풍성한 생명으로 이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명상의 시간 : 유기염소- 다이옥신

유기염소는 독성도 강하지만 난분해성 물질이어서 오랜 산업활동의 결과 전 지구로 퍼져 오염원이 존재하지 않는 북극과 남극에서까지 검출되고 있다. 이밖에 PAHs. 프탈레이트. 알킬페놀. 케폰. 트리아진. 스티렌. 알드린. 디엘드린 등 `호르몬 같은 화학물질'로 꼽히는 물질은 많다. 그러나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은 역시 다이옥신 등 유기염소 물질이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정욱 교수는 "이 물질들은 아주 적은 양이라도 임신된 모체에 들어가면 마치 자신이 에스트로겐(여성 호르몬)인 것처럼 흉내를 내 태아의 성장을 방해한다"며 "이렇게 해서 태어난 남자 아이는 성인이 돼도 정자를 정상적으로 만들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세계 최대의 환경단체인 그린피스도 "이들 화학물질은 남성뿐 아니라 여성의 생식에도 영향을 끼쳐 지난 2백년 동안 소녀의 초경 시기가 17살에서 12.8살로 떨어졌으며, 자궁내막증. 질암과 자궁경부암이 증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사 호르몬 물질은 공기. 물. 토양 등 어디에나 아주 조금씩 존재하지만, 먹이사슬의 꼭대기인 포유류의 지방조직에는 자연계보다 최고 10억 배나 높은 농도로 축적돼 호르몬 체계 교란에 결정적인 구실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따라 그린피스는 최근 들어 운동의 첫째 목표를 반핵 대신 `전지구적인 유기염소 사용 금지'로 설정하고 각국 정부와 거대 화학회사들에 맹렬히 압력을 가하고 있다. 민병윤 교수는 "유기염소는 물이나 토양 속에서는 수십~수백년 동안 분해가 안되는 난분해성 물질이지만, 기름에는 잘 녹아 몸 속에 들어오면 생물의 지질에 90% 이상이 쌓여 호르몬체계를 흩뜨리는 외에도 암을 일으키고 신체의 면역체계를 약화시킨다"고 말했다.

특히 유기염소 가운데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PVC를 태우면 맹독성의 다이옥신이 나와 큰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미국 위스콘신대학의 리처드 피터슨 교수는 실험을 통해 임신한 쥐는 보통의 쥐가 생식 장애를 일으키는 다이옥신 농도의 1/100에만 노출돼도 성기가 작고, 정자 수가 적거나, 암컷처럼 행동하는 수컷을 낳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다이옥신이 생식장애를 일으키는 양은 몸무게 1kg당 64나노그램. 그러나 보통 사람에게서 검출되고 있는 다이옥신 농도는 몸무게 1kg당 평균 54~59나노그램에 이른다. 대다수 사람들은 생식 장애의 한계치를 눈앞에 두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한겨레신문96.10.13)

통권 제 8 권 25호

설교일자: 1999. 6.20.

평화를 바라보며(마10:27-42)

1. 오늘 세계적십자의 날을 맞이하여 전쟁에서 평화에 이르는 삶의 자세를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1859년 이탈리아 북부의 솔페리노 전쟁터에서 스위스의 청년 실업가 『앙리·뒤낭』에 의해 탄생한 적십자(1863년 10월, 제네바)는 모든 고통과 아픔을 겪는 이들을 위한 희생과 사랑을 베푼 것처럼 우리 성도의 자세는 참된 평화를 추구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며칠전 한 신문에 연평도 할아버지의 푸념과 같은 우리 민족의 아픔을 실은 기사를 읽었습니다. 꽃게를 잡으려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총질까지 해대는 북한을 생각하며, 오랫동안 연평도에 사신 한 어르신은 공산주의나 민주주의 같은 건 잘 모르지만 나라가 백성을 굶겨서는 안되는데 하시면서 북한 사람들이 배고파하는 것을 한민족으로 불쌍하게 여길 뿐이라고 했습니다. 진정 그리스도인은 평화를 추구하려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욕심에서 해방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2. 참된 평화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사람이 공포를 느끼는 대상은 너무 악하거나 너무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자기의 생명을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관계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악에 대한 공포로 인해 거룩한 것에 대한 공포를 느끼지 못합니다. 진정 우리를 영원히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은 거룩하신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이심을 잘 깨닫지를 못합니다. 삶에 있는 두려움은 하나님과 사람을 올바로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요일4:18) 사랑은 두려움을 극복합니다. 우리가 경건과 두려움으로 주님을 섬길 때에 은총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히12:28) 올바른 신앙만이 평화의 조성자가 될 수 있고(마5:9), 능력있는 사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능력과 사랑과 근심하는 믿음으로 살았습니다.(딤후1:7)

3. 참된 능력은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데에서 나옵니다. 증거는 확신을 통해 옵니다. 먼저 자신을 정결케 하며 거룩한 믿음을 가지도록 해야 합니다(고후7:1) 자신의 모습이 올바로 갖춰질 때에 능력 있는 증언을 할 수 있습니다. 참된 증언이란 하나님의 정의를 선포하고 자신이 부정한 삶에 빠지지 않도록 늘 회개하는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갈6:1,고전9:27) 예수께서 무엇을 말씀하셨으며, 어떻게 사셨는지를 마음에 묵상하고 선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향한 깊은 사랑을 증거하되 아첨이나 탐심이 아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바른 말을 선포하였던 것(살전2:1-8)처럼 우리는 날마다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고백을 해야 합니다.

4. 참된 봉사는 주님의 이름으로 실천하는 데에 있습니다. 백문(百聞)이 일견(一見)보다 못하다는 말처럼, 지식과 실천의 차이는 엄청난 것입니다.(약1:22-25) 신앙인의 모습을 하고, 형식은 있지만 실천이 없을 때 우리의 겉모습은 거짓이고 위선일 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지혜로운 바보들입니다. 바보들의 축제가 사건 현장에서 일어날 때 주님은 기뻐하시고, 함빡 웃음을 보여주십니다. 십자가의 길은 어리석어 보이지만 그것은 위대한 사랑을 실천한 그리스도의 상징입니다. 에드워드 영(E. Young)이 말한 것처럼 "망설임은 시간을 훔쳐 가는 도적"일 뿐입니다. 진리는 실천할 때 가장 잘 알 수 있습니다.

주일 공동 기도

슬픔과 고통에서 기쁨과 평화의 시대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전쟁의 폐허 속에서 피어난 생명의 고귀함같이 이 민족을 사랑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을 경외함으로 인해 삶의 애착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주님을 사랑함으로써 영생을 바라보는 믿음을 허락하시니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쟁 속에서 오직 승리를 추구하려는 우리의 안일함은 곧 우리의 불신앙이요, 어리석음임을 고백합니다. 과거에 대한 악몽과 슬픔에서 해방되어 우리 민족이 하나되어 주님을 함께 찬양하는 날이 속히 오기를 간절하게 원하오니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자신의 안전과 행복보다 주님의 영광과 정의를 추구하는 믿음을 더하여 주시고, 주님의 희년을 소망하는 저희들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참된 희망가운데 변화를 꿈꾸며, 성심과 신심으로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 위에 주님의 복이 넘치게 하시며, 뜻깊은 예배를 드리는 이 시간이 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명상의 시간 : "전쟁의 노래가 찬송으로"

선교지에서 돌아온 조지 그린 박사는 자신의 경험담을 다음과 같이 들려주었다.

"내가 처음으로 파견된 선교지인 아프리카로 갈 때였습니다. 정글 속으로 뚫린 크고 아름다운 강을 따라 배를 타고 여행을 했습니다.

그런데 해가 지고 밤이 오자 정글 곳곳에서 전쟁을 알리는 북소리 울리기 시작했고 그 소리는 밤새도록 계속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걱정스럽게 그 소리를 듣고 있는데 선장이 다가오더니 배를 대고 밀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니 다시 돌아가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설득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장도 불안해서 안절부절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때 나의 머리 속을 이 정글의 어두움 한가운데서도 주님께서는 당신이 창조하신 것들을 지켜보고 계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을 실행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후 여러 해 동안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했고 드디어 정글을 떠나야 할 날이 돌아왔습니다. 나를 환송하기 위해 수천 명이나 되는 원주민들이 강가로 몰려나왔는데 그들은 바로 내가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나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강 저쪽에서 나를 실어가기 위한 배가 나타나자 그들은 한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더 이상전쟁의 노래는 아니었습니다. 그들 모두가 이제는 익숙하게 부를 수 있게 된 "주 예수 이름 높이어"(36장)라는 찬송이었습니다."(C.로이 엔젤)

통권 제 8 권 26호

설교일자: 1999. 6.27.

주께로 나아가자(슥1:1-6)

1. 캐나다에 가면 웅장하고 아름다운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습니다. 예전에 사람들이 그 폭포가 큰 강으로 알고 배 위에서 유람을 하다가 참변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폭포앞에 이르기 전 10m까지는 물위가 아주 잔잔하기 때문에 공중의 열기구에 탄 사람들이 경고를 해도 믿지를 않다가 폭포수에 휘말리기 시작할 때는 이미 늦고 맙니다. 믿는 자의 삶이 어떤 때는 아깝고 이해하기 힘든 일도 있지만 믿음으로 살아나가면 모든 일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 쾌락을 위해서, 명예를 위해서, 학문을 위해서라면 아깝지 않다가도 주님을 위해서라면 아쉬울 때가 있습니다. 존 웨슬리는 말하기를 "그리스도인의 호주머니가 회개하지 않으면 참된 회개를 했다고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열심히 벌라 그리고 열심히 저축하라 그리고는 그 물질을 하나님을 위해 값지게 활용하라."고 설교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께 나아가는 방법을 알고 실천해야 합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바로 성도의 본분입니다.

2. 먼저 전심으로 회개해야 합니다.(삼상7:3-4) 깨지고 쪼개지고, 흩어진 후(렘4:3)에 하는 회개보다 여유가 있는 변화된 삶이 더욱 아름답습니다. 다윗은 인구조사를 통하여 왕의 권위를 세우고자 하였을 때 하나님의 그의 교만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는 결국 그 값을 치르는 희생과 솔직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 회개하였습니다.(대상22:1-30) 주님 앞에 불꽃처럼 정결하고 아름답게 피어나야 할 신앙의 요소가 사라질 때, 그 영혼은 이미 죽은 것입니다. 내 영혼의 욕구와, 악한 의도와 욕심을 하나님 앞에 철저히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주의 도우심이 없이는 구원이 없습니다.

3. 습관적 범죄에서 벗어나라.(슥1:4) 주님께서 가르치신 대로 날마다 서로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고 용서하는 것은 소중한 일입니다. 기도는 성화를 이루기 위한 정화의식이요, 삶의 전환을 위한 결단입니다.(딤전4:5,요일1:9) 마케도니아의 제왕이었던 알렉산더는 형편없는 그의 생활로 말미암아 알렉산더라는 이름이 마구 아무렇게나 불리어졌습니다. 이 소식을 안 알렉산더 대왕은 예고 없이 졸병의 막사를 방문하여 말하기를 "내가 두 가지를 명령한다. 네 이름을 바꾸어라. 바꾸기 싫거든 네 삶을 바꾸어라." 참된 결단은 먼저 마음의 진정한 변화가 필요합니다. 주를 위해 살고, 주를 위해 죽을 때 그는 참 사람이요 참 성도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롬14:6-8)

4. 주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창22:1-14) 사울은 백성을 두려워하여 비겁하게 되었고 불순종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진정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다른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삼상15:24-30) 주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요청에 응답할 때 하늘과 땅의 모든 은총과 기쁨이 다가오고 주의 사랑과 인내로써 이세상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살후3:4-5) 헛된 것을 추구하고, 불의한 일을 사랑하는 자는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그 속마음을 살피는 분이십니다. (골3:25) 이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함께 나누어지며,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주의 영광을 위해 동참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나아갈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맑은 하늘은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마음이요, 빛나는 햇빛은 우리를 향한 주님의 자비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의 생명을 거룩하게 하고, 주님의 은총은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하시니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실패와 좌절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소망의 손길을 베푸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셨건만 우리는 주님의 넉넉하신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불평과 욕심으로 원망할 때가 많았습니다. 주님, 이 시간 우리의 참담한 현실을 주님 앞에 고백하오니,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주님의 거룩하신 계획을 깨달아 알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웨슬리의 경건과 성결을 추구하는 사랑하는 주의 자녀들에게 은총을 더하여 주시고, 주님의 참된 평화와 사랑을 누리는 저희들이 되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날마다 모든 일 가운데서 주님의 형상을 따라 거룩한 땅으로 나아가는 저희들로 삼아 주시옵소서.

거룩한 희생을 허락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명상의 시간 : "플레처의 자기 반성"

존 플레처는 9개조의 좌우명을 만들어 이것을 거울삼아 자기 속 사람의 모습을 비추어 보고 스스로를 깊이 훈계했다.

"첫째, 내 영혼의 눈이 깨어 있는가? 오늘 아침 눈을 뜬 이래 그 사상이 미혹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고 있는가?

둘째, 나는 기도를 할 때마다 더 한층 하나님께 가까워졌는가? 그렇지 않으면 나약한 정신에 붙들린 것이 아닌가?

셋째, 나의 신앙은 방심 때문에 약해졌는가? 분투에 의해서 강해졌는가?

넷째, 나는 일체의 불친절한 말과 사상을 이겨냈는가? 다른 사람이 나를 높일 때 기뻐하지는 않았는가?

다섯째, 나는 빛과 힘과 기회가 허락하는 한 귀한 시간을 가장 잘 사용했는가?

여섯째, 나는 하나님을 위해 절약해야 할 경우 절약했는가? 자신을 기쁘게 할 만한 무언가를 절약하지는 않았는가?

일곱째, 나는 말이 많으면 죄가 없을 수 없음을 기억하고 나의 혀를 잘 지배했는가?

여덟째, 나는 몇 번 나를 이겼는가?

아홉째, 나의 생활과 말은 복음이나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리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