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권 제 8 권 18호

설교일자: 1999. 5.2.

거룩한 가정(벧전2:1-10)

1. 화재를 당한 어느 믿음의 가정을 찾아온 사람은 화재로 인해 모든 것이 한순간에 타 버린 것을 안타깝다고 말하자 그 부부는 "집과 재산은 모두 불타 없어졌지만 가정의 행복은 남아있습니다."라고 하였다. 믿음을 지키는 행복한 가정의 특징은 바로 영적인 한가함(rest)이요,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고 할 수 있다. 다급함과, 무지가 우리의 인생을 괴롭힐 수 있지만 이미 세상 염려와 욕심에서 초연한 영적인 성숙함을 가진 성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성서에도 보면 여러 가정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편애하는 가정에서 성장한 야곱은 똑같은 범죄로 저질러 자녀들간에 다툼과 고통을 안겨주기도 하고, 믿음으로 성장한 에스더는 민족을 위해 자신을 목숨을 바치기도 했다. 가정은 모든 기억의 박물관이며, 처음으로 인간 관계를 배우는 장소이다. 옛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것은 누구나 기억해야 할 말이다.

2. 신령한 믿음으로 성장하는 성도가 되라. 에디 쉬이퍼는 가정에 대해 말하기를 "신앙의 출발지이면서 완성지"라고 하였다. 이러한 신앙인의 모습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특별히 부모는 거룩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영적 기초와 삶의 태도가 중요하다.(살전5:9) 자녀들은 바로 크레용이나 물감을 대지 않은 도화지와 같다. 부모의 행동이 올바르다, 그르다고 판단하기 이전에 따라하게 되는 것이다.(롬6:17-18) 사랑에 민감한 가정은 사랑으로 충만해지고, 불의에 관용한 모습을 모여준 가정은 자녀를 범죄의 자리에 내어놓기 쉬운 것이다. 사도 바울은 ① 신령한 젖을 사모하여 ② 하나님의 구원과 자비를 기억하고 ③ 하나님의 선택을 기쁘게 받아들이라고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고전10:4)

3. 하나님께 신령한 예배를 드리는 자가 되라. 예배는 신령한 가정을 위한 초석이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써 세상에 대한 이치를 배우게 되는 것이다.(골1:27-29) 성서의 핵심은 하나님/사람을 사랑하고 힘/물질을 올바로 사용하라는 카테고리 통해 이해할 때,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어느 가난한 노인이 부자 노인에게 배운 부자가 되는 비결은 소를 지붕에 올리고, 소금섬을 물속에 넣으라는 아버지의 말에 아무런 대꾸없이 순종하는 가정의 화목함이었다. 신령한 예배를 드리는 성도는 ① 신령한 가정을 이루며 ② 인생의 디딤돌이 되어야 하며, ③ 주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고후10:18) 믿음은 하나님과의 만남의 사건이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지혜가 필요하다.

4.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거룩한 공동체를 이루라.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①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들이며, ② 기이한 빛과 정의의 자녀들이고, ③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전파하는 백성이 되어야 한다. 신앙의 새 출발이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벧전3;15-16) 이스라엘의 어떤 랍비는 자신의 설교 때문에 가정의 평화가 깨진 집을 위해 남편의 요구대로 기꺼이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도록 허용하였다. 그 랍비는 "한 가정을 평화를 되찾아 주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지 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러한 희생과 사랑이 거룩한 가정을 이루는데 필요한 공동체 정신이다.(벧전1:22) 나보다는 우리(혹은 가정)를 생각하고, 우리보다는 민족을 생각하고, 민족보다는 지구 공동체의 미래를 염려하는 지구윤리의 시대(한스 큉)인 것이다. 가정의 소망은 자신의 변화에 달려있다.(히10:22)

주일공동기도

가정의 평화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엄동설한을 지나 해마다 다가오는 푸른 계절은 잊지 말고 주님의 자비를 기억하라는 주님의 은총입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 거룩한 믿음을 배우게 하시고, 세상의 불의함에 상한 우리의 영혼을 치유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주의 선하심과 자비가 넘치게 하사 늘 찬양과 감사의 삶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의 주님, 죽음과 불의의 장막을 넘어 찬란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 임재하기를 원합니다. 답답함과 어지러움,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한 우리의 내면을 성령의 불로 태우시고, 정결한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미래를 위한 예비된 당신의 거룩한 자녀들에게 사랑의 능력과 은총을 더하셔서 위대한 하나님의 백성이요, 완전한 성도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자비에 자비를 더하시고, 사랑과 평화로 채워 주시옵소서. 질그릇같은 저희들에게 능력을 주시어 주의 사역이 힘쓰도록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어린이와 늘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명상의 시간 : 자녀교육 십계

제1은 아이를 너무 떠밀지 말찌니 빨리 자라는 것이 잘 키우는 것이 아니니라

제2는 아이를 얕보지 말지니 그들의 세계는 부모의 관찰보다 훨씬 깊으니라

제3은 감정을 퍼붓지 말찌니 어린이는 어른의 감정을 쏟는 휴지통이 아니니라

제4는 아이에게 이기려고 하지 말찌니 가정은 전쟁터가 아니니라

제5는 칭찬을 아끼지 말찌니 이보다 나은 보약이 없느니라

제6은 아이를 나의 소유라 생각하지 말찌니 감사함으로 대할찌니라

제7은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지 말찌니 부모가 최상의 교재이니다

제8은 아이의 현재만을 보지 말찌니 그 가능성과 미래상을 볼찌니라

제9는 아이를 통틀어 (일반화하여) 보지 말찌니 한명 한명은 특별하니라

제10은 강요도 아부도 삼갈찌니 진실을 보일찌니라


통권 제 8 권 19호

설교일자: 1999. 5.9.

복있는 가정(시112:1-10)

1. 가정의 달, 5월. 우리는 점차 가족공동체의 해체라는 사회문제를 보게 된다. IMF의 영향으로 실직당한 가장의 가출, 이혼의 급증, 버려지는 자녀들의 모습 등은 바로 기초공사 없이 급속하게 성장한 한국 현대문화의 결실이다. 어느 교회에서나 나타나는 고3 학생들의 증발(?)은 대학입시를 위해서 경배와 찬양의 가치를 잠시 뒤로 미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의 어리석음은 신앙을 무속종교로 하락시키고, 스스로 영적 가치를 무너뜨린다. 신앙의 근본이나 가치관을 흔들어 놓는 부모들의 영성 상실은 진정한 승리의 길을 잃어버리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근본주의 신자들이어야 한다. 하나님을 향한 개방성, 단순성, 성실함에 대한 고백은 변함없는 가치들이다. 개인의 욕심이나 상황으로 인해 이러한 영성에 대한 우선 순위가 뒤집어질 수는 없다.(마6:33)

2. 하나님을 향한 가정은 복이 있다.(시143:6) 시편기자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와 사람을 향한 정직함이 곧 신앙의 핵심임을 역설하였다. 신앙의 기초가 약하면 어려운 상황에 쉽게 흔들리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살후3:5)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써 지위와 형편에서 부족함이 없었지만 하나님의 영에 거스르는 행동을 인하여 실패한 지도자가 되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선언하고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의 불신앙을 꾸짖었다. 복이 넘치는 가정으로 만들기 위한 신앙의 핵심을 생명의 근원으로 여겨 변함없는 마음으로 실천해야 한다.(약4:8) 그러나 율법에 얽매여지는 신앙이 되어서는 안되며 우리가 행해야 할 규범을 간절함을 담아 실행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정한 복을 허락해 주신다.(롬7:6,딤후2:4)

3. 은혜와 사랑을 나누는 가정은 복이 있다. 거룩한 은총의 사건을 만들고 나누는 일은 참으로 중요하다. 나눌수록 없어지는 것은 불의와 세상을 향한 욕심이요, 나눌수록 커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화로 인하여 성장하는 우리의 믿음이다.(딤전 6:17-19)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진정한 속죄를 통한 감사가 넘치는 삶이다. 불행과 슬픔과 지옥이 아닌 구원과 기쁨과 천국의 길을 향해 나아가는 영혼의 순례자, 소망의 성도가 되는 것이다.(미6:9) 주님으로 인해 불가능한 일이 가능하게 되고, 실패할 것 같으나 마침내 승리하는 성도가 된다. 선한 일에는 두려움이 없고 단지 칭찬만이 존재한다(롬13:3)고 바울은 선언한다. 오직 우리는 사랑의 빚 외에는 지지 말고 진정한 믿음의 일꾼이 되어야 한다.(롬13:10)

4. 담대한 믿음으로 세워진 가정은 복이 넘친다. 지나치게 자녀의 생활에 간섭하면 결벽주의자가 되거나 반항아가 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양육하는 부모 자신의 결점을 자녀를 통해 역전시킴으로서 보상받으려는 내면적 요소가 강하게 나타나는 것일 뿐이다. 강압보다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 부여와 하지 않으려는 행위에 대한 동기 부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 1)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2) 변화된 미래를 소망할 필요가 있으며, 3)변화하기 위한 과정을 설정하고 실천에 옮길 때 우리의 가정도, 교회도, 나아가 이 민족도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학자는 우리의 현대문화를 천민적 사고와 패배주의로 가득 찼다고 말한다. 그 결과는 우리 민족에게 IMF라는 전반적인 고통을 안겨준 것이다. 영성의 참된 변화만이 복있는 삶이다.(렘2:27)

주일공동기도

가정의 진정한 주인 되시는 자비하신 아버지,

당신의 넓고도 깊으신 은혜로 인하여 우리의 영혼은 오월의 푸른 잎사귀가 돋아나듯 평화와 소망이 넘칩니다. 주님으로 인해 참 생명의 길을 발견하였고, 깊고도 오묘한 진리를 따라 살도록 인도하시니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인생의 불의는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마침내 만물의 멸망으로 인도하건만 어리석은 우리 인생은 눈앞에 놓인 안락함을 위하여 덧없는 세월을 보내기도 합니다. 이시간 우리의 지난 잘못을 마음속 깊이 뉘우치고 눈물로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시고, 새로운 믿음을 날마다 더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은총을 따라 교회를 섬기는 일과 세상을 올바로 섬김으로써 이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는 충성스런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하시고, 정의를 따라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사역에 동참하는 저희들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에 속한 모든 가정과 자녀들이 하늘 나라의 믿음을 깨우쳐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옵시며, 선교의 사명을 게을리 하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과 발걸음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의 창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명상의 시간 : EQ(감정지수)가 높은 아이로 키우세요

EQ는 대인관계의 지각능력이나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능력, 정서적인 안정성을 평가, 수치로 환산해낸 것이다. IQ(지능지수)와는 상대되는 개념. 기독교가정사역연구소 송길원 소장은 "구미 각국 여러 연구들이 개인 성공요소에서 IQ보다는 EQ가 차지하는 비중이 월등히 높다는 결론을 내놓고 있다"며 "학력이나 지능보다는 마음의 특성이 성공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EQ 형성은 가정환경이 90%이상을 좌우한다는 것이 송 소장 설명이다. 이 연구소는 연구결과와 실행프로그램을 종합, [자녀들의 EQ를 높이는 가정교육 10계명]을 제안했다.

①자녀들과 유머를 나눠라. ②자녀들에게 책을 읽어줘라. ③집안일을 거들게 하거나 심부름을 하게 하라. ④집에서 만든 음식을 먹여라. ⑤자주 껴안거나 볼을 맞추는 신체접촉으로 사랑을 표현하라. ⑥노는 것을 가르쳐 주라. ⑦힘든 과제를 제공하는 데 인색하지 마라. ⑧성공했을 때보다 실패했을 때 가까이 하고 격려하라. ⑨자녀들과 자주 여행을 하고, 다른 가족과 어울릴 기회를 제공하라. ⑩한 가지 깊은 소망을 가지게 하라.

통권 제 8 권 20호

설교일자: 1999. 5.16.

예수를 기다리며(행1:6-14)

1. S. 베게트의 고도를 기다리며(Wating for Godot)처럼 누군가를 막연히 기대한다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욕심이요 허무함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기르는 것도,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다닌 것도 위대한 일에 대한 동참이고, 거룩한 사건을 만드는 일이지만 그 뒤에는 기대라는 것이 늘 따라 다닙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실 때 남은 자는 겨우 몇 명의 여인들, 제자들의 뒤를 맴돌던 몇 신도뿐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과 권능으로 일하실 때와는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제자들 앞에 나타나시자 그들은 모두 모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남은 사역을 맡기시고 승천하시자 그들은 하늘만 바라보았습니다. 우리는 제자들처럼 의미없는 기대와 욕심의 나날을 지내고 있지 않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선교와 새로운 기대, 그리고 기도라는 사명을 남겨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대를 이루고 있습니까?

2. 그리스도께서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명하신 것은 지상 대과제인 선교입니다. 이제 선교의 핵심은 예루살렘과 사마리아를 지나 땅 끝처럼 여겨지는 모든 곳에 복음이 퍼져 나아갔으며, 종교의 자유를 제한하는 나라 즉 이슬람권, 공산권과 최종 선교지인 전세계를 묶는 인터넷이란 가상공간(cyberspace)만 남았을 뿐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러한 시대적 사명을 자각하고 감리교회 최초로 인터넷 교회(1996.3.22)를 열었으며 무한한 발전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선교의 사명은 이제 가상공간을 통해 완전한 교회로 성장하게 되고, 시공을 초월해 어느 곳에서나 언제든지 주님을 말씀을 접할 수 있고 찬양을 부를 수 있으며, 말씀을 배우고, 대화와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닫힌 교회가 아닌 열린 교회요, 제한된 교회가 아니라 무제약적인 교회로 하나님의 선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3. 이제 그리스도를 향한 기대를 가져야 합니다. 물질과 권력은 정보화 세계에서 지식 에서 벗어나면 한계를 가져오게 됩니다. 지식은 정보의 체계화이며, 지식과 그 지식을 통한 방법론을 통해 물질과 권력은 확보되는 세계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지식의 창조자이시며, 진선미의 근원되시는 하나님 안에 거할 때, 진정한 그리스도의 차원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며, 영적인 핵심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없이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하늘을 바라보며 그리스도를 바라보듯 헛된 생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음으로 기다리며 윤리적 신비주의를 현재화시키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옷을 입고, 그 안에서 살고 죽는 것입니다.

4. 모든 신앙의 첫출발은 바로 하나님과의 진정한 대화 즉 기도입니다. 만남이 있으면 대화가 있고 그 대화를 통해 서로를 더 잘 알 듯이 하나님을 알고, 그리스도를 알고, 성령을 체험할 때에 우리는 진정한 영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바로 말씀과 기도였으며, 전자는 인간을 향한 것이요, 후자는 하나님을 향한 것입니다. 이것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조화를 이룰 때에 완전해 집니다. 율법(제사장)만도 아니요, 예언서(선지자)뿐만 아니라 성문서(지혜)를 통해 구약이 완성된 것처럼 우리의 삶도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교류와 만남을 통해 온전해 집니다.

주일공동기도

위대한 가정의 인도자되시는 하나님,

거룩한 가정을 창조하시고, 자라나는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시며 날마다 새로워지는 진리의 길로 인도하시니 감사합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주님을 찬양하며 합당한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어려움과 고통스런 날이 주님을 위한 것이라면 달게 받게 하시며, 즐거움과 만족이 불의한 것이라면 과감하게 내던질 줄 아는 믿음과 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온갖 시험과 불의에 사로잡힌 이 시대에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당신의 증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또한 복음과 은총을 온전하게 이루는 가정, 희망과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가정과 자녀들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사마리아인의 고운 마음씨와 늦은 밤, 친구를 위해 간청했던 사람의 정성을 배우며, 항상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던 초대 교우들의 열심을 우리 안에 가득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명상의 시간 :좋은 부모 역할

꽉막힌 부모가 아이를 망친다는 시인 김송희 님의 부모역할 교과서 "자녀교육의 이름으로 저지르고 있는 77가지의 죄"(베스트셀러)를 통해 몇 가지를 생각해 보도록 한다. 아이를 망쳐놓는 교육을 버리는 부모가 됩시다.

▷ 글자만 가르치고 상상력을 죽이는 태도를 삼가야 한다.

▷ '넌 공부만 해라, 나머지는 엄마가 다 해 줄게' 하는 태도도 버려라.

▷ 남보다 뛰어나야 한다고 강조하기보다는 남과 다르게 살도록 가르쳐라.

▷ 상을 받은 것 보다 몇 번째 상인가를 묻는 태도를 버려라.

▷ 결과만 중시하고 과정을 무시하는 부모가 되어서는 안된다.

▷ 부모는 TV를 보면서 아이에게 공부하도록 다그치지 말라.

▷ 자신은 효도하지 않으면서 자식에게 효도하기를 기대하지 말라.

▷ 대화는 없고 잔소리만 할 때 자식들은 부모를 이해하지 못한다.

▷ 남에게 안보일 때 하는 행동은 자녀를 그르치게 만든다.

통권 제 8 권 21호

설교일자: 1999. 5.23.

네 십자가를 지라(마16:21-28)

1. 오늘은 웨슬리 회심기념주일입니다. 어느 날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한 소녀가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 그녀는 너무나 무거운 십자가를 메고 갑니다. 예수께서 나타나시자 예수님은 목수시니 조금씩 잘라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주께서 미소지으며 십자가를 작게 잘라주셨고 그녀는 작은 십자가를 가지고 언덕을 넘는데 요단강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강가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십자가를 타고 요단 강을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십자가는 너무도 작았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소녀는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십자가는 풍습이나 전설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현재의 삶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설교자가 말씀을 통해 불꽃처럼 타오르듯이, 성도는 믿음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이 하나님의 구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성도들에게 거침돌이 아니라 디딤돌이기 때문입니다.(롬9:30-33)

2. 십자가는 지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가 진정 구원에 대한 확증을 가지고 있는가? 주님이 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분이시고, 그분을 위해 나의 모든 것을 포기할 마음 자세가 되어 있는가? 명예, 자존심, 재산, 가족 등이 아직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인가? 주님을 향한 단순한 믿음을 소유했는가? 주님을 위해 충실한 삶, 성화에 이르는 길을 향해 나아가려고 노력하는가? 신앙은 지식이며,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실천해야 할 윤리적 요구와 사명을 부여합니다. 내적인 신앙의 토대는 바로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고 경외하는 모습은 모든 믿지 않는 이들에게 성도의 표징이 되어야 합니다.(행10:35) 이는 구원의 표징이요, 주님의 제자로서의 삶의 방식입니다.

3. 십자가는 지는 성도는 자신의 십자가를 감당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고 예수를 따르는 일은 무가치한 일입니다.(마10:38) 십자가는 로마시대의 흉직한 죄수들에게 고통을 주기 위한 형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장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상징이며, 십자가를 통해서 사랑과 희생과 진정한 교제를 나누게 됩니다. 십자가는 화려한 철학이나 아름다운 개념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사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향해 마음의 문을 열고 우리에게 주어진 작은 십자가를 지고 나아갈 때 우리마음 깊은 곳에 주님이 찾아오십니다. 주님께서 우리 영혼의 문을 두드리실 때를 깨닫고, 영접하는 자만이 진정한 성도입니다.(계3:20)

4. 십자가는 지는 삶은 영생과 영광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초라하고, 고통스러운 십자가는 우리의 영원한 미래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가치가 아닌 영적인 가치를, 상대적 가치가 아닌 영원한 가치를 통하여 우리에게 상급을 허락합니다.(고전1:27-29) 어떠한 환경에서도 믿음으로 극복하며, 새로운 미래를 창조해 나가는 영적인 안목을 베풀어주십니다. 우리가 진정 주님을 믿고 고백할 때에 주님은 바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존 웨슬리 목사 의 비석에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언가를 시작하려고 하면, 인생의 날이 저물어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도는 해있을 때에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부지런히 일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일공동기도

거룩한 사랑을 가르쳐 주신 하나님,

십자가의 고통을 통하여 사람의 길을 보여주시고, 우리 가운데 찾아오시어 새 힘을 허락해 주시니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생명은 약동하고 믿음은 줄기를 뻗게 하셔서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불의와 죄에 무덤덤하고 향락과 부패를 추구하는 오늘의 현실은 바로 우리의 게으름이요, 죄악이 넘쳐흐르는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였음을 고백합니다. 십자가 없는 생활, 거짓과 술수를 앞세운 헛된 생각들 가운데에서 해방되어 땀 한 방울의 가치와 희생을 소중히 여기는 아름다운 인생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말씀을 통해 안전지대에 거하며, 주께서 베푸시는 산업과 분깃에 만족하는 저희들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베푸시는 생명의 길을 따라가며,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곧은 믿음으로 나아갈 때 구원의 노래와 은총의 방패로 감싸 주시옵소서. 오늘도 변함없이 주를 향해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는 저희들에게 영원한 소망을 주시옵소서.

십자가를 통해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명상의 시간 : 십자가

우리의 이해도를 측정하는 정밀검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향한 우리의 태도가 어떠한지를 보는 것이다. 이보다 나은 기준은 하나도 없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는 즉각적으로 우리 모두에게 판결을 내려 주며 심판의 필요성도 결정지어 준다. 십자가 앞에서는 여러분이 중립을 지킬 필요가 없다. 십자가는 언제나 모든 인간들을 구분하고 있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바는 십자가와 관련하여 언제나 두 가지 견해가 있다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대적하는 것이 된다든지, 아니면 우리가 자랑삼아 말하는 그 어떤 것보다도 뛰어난 것이든지 둘 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가 가장 눈에 거슬리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어쩌면 겉으로는 가장 많이 자랑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내가 이런 말은 하는 것은 십자가가 매우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십자가에 대해서 많은 설교를 한다. 그러나 그들이 전하는 것은 귀에 달콤한 효과적이고 감동을 자아내는 아주 아름다운 것이다. 이런 자들이 십자가를 가장 많이 대적하는 자들이다. 사실 그들은 십자가를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으로 따돌리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십자가의 숭고한 실체를 심히 대적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또한 십자가를 하나의 미학적인 서술에 한정시키고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철학화해 버린다. 그래서 그들은 십자가를 감상적으로 취급하려고 하고 연민의 정을 자아내게끔 한다. 이 같은 사람에게 십자가는 거치는 것이다.

- 마틴 로이드 죤스 -

통권 제 8 권 22호

설교일자: 1999. 5.30.

신앙의 근거(고전15:12-26)

1. 오늘은 신앙의 길을 위한 근거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 사람은 방법을 구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찾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부활은 하나님의 사건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대로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 신앙의 의미는 상실되고 맙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생명과 죽음의 주권자이시며, 마지막 날에 심판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참된 신앙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세겜 땅에 모여서 이스라엘 백성이 고백하였듯이 주님을 섬기려면 모든 우상을 제거하고 오직 주님을 섬기겠노라고 다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신앙은 바로 영적인 전환, 삶의 목적을 하나님을 향할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 생활을 통하여 진정한 영적 능력과 변화 속에 거하지 아니하고서는 주님을 깨닫지도, 알지도, 느끼지도 못합니다.

2.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영원한 도움이 되십니다. 당신이 어렵고 힘들 때에 과연 누가 당신의 영원한 도움이 되어 줄 수 있습니까? 등불과 같은 인생에 태풍이라도 불어오면 우리의 생명은 꺼지고 맙니다. 우리의 영원한 방패요 요새가 되시는 주님 안에 거할 때 우리는 안전합니다.(시28:7) 세상의 물질도, 능력도, 모두 우리를 가려주지 못합니다. 그 보잘 것 없는 생의 티끌에 매달릴 때 우리의 생은 더욱 초라해 지기 때문입니다. 심판의 날에 우리의 양심은 하나님과 거룩한 무리들 앞에 우리의 불의와 무능과 어리석음을 고발할 것입니다.(롬2:15) 날마다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말씀과 그 부름에 합당한 실천을 이루어 진정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신앙으로 인정받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3. 또한 우리 구원의 근거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을 이기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갈5:1) 이는 현재의 생애를 넘어 주님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히9:14) 그리스도인들의 영성생활의 출발점은 바로 하나님의 다스림에 대한 인식입니다. 복음 안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다스림을 받고 살아가는 것이 영성생활의 출발점입니다.(벧후3:11-14) 이러한 사고를 통해 소유와 존재와 힘에 대한 자유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항상 "그리스도안에" 사는 법과, 삶의 양식을 깨우쳤으며,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감리교 신앙의 핵심인 마음과 생활의 성결을 상실하면 기독교 신앙의 전부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4. 방법이 아니라 삶의 목적을 생각하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지혜로운 삶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행10:35) 영국감리교회 총회에서 웨슬리 목사님은 "감리교인을 부르신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민족을 개혁하고, 특히 교회를 개혁하고 성서적 성결을 온 땅에 전파하는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요일3:17-19) 그 말대로 일주일에 한번 모일 때마다 헌금을 통해 가난한 이들에게 석탄과 빵과 의복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이 생애만을 위해 산다면 그저 적당한 권모술수와 육신의 만족을 얻으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진정한 생명의 의미를 발견한 성도는 복음을 전파하고, 사랑으로 서로 돌보며, 생명을 더욱 풍요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선한 사역에 동참해야만 합니다.(약1:25) 이것이 바로 신앙인의 길입니다.

주일공동기도

우리에게 날마다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

사랑과 평강의 길로 인도해 주시니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부활의 권능으로 우리에게 찾아와 주셔서 새로운 미래를 소망하며 살아가도록 은총과 기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는 이시간 하나님 나라의 영성과 심오한 믿음의 비밀을 깨닫지 못하였음을 주님 앞에 고백합니다. 지난날의 부끄러운 모습들, 우리의 메마른 심령 위에 성령께서 임재하여 주셔서 정결케 하여 주시옵소서. 나아가서 웨슬리의 경건과 성결, 그리고 사랑의 힘을 되새겨 진정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가 되도록 권능과 믿음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허황된 생각과 굳은 마음을 버리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온유함과 따스함을 나눌 수 있는 넉넉함과 평안함을 주시옵소서.

죄악과 불의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정의를 세울 수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진실함과 고상한 인격을 갖춘 저희들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안에 계시듯이 우리도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사랑으로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명상의 시간 : 신앙인의 세 유형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다음 세 유형을 볼 수 있다

(1) 항상 현실적인 안전만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만 추구하면서 저 높은 곳을 바라보지 못하는 어린 아이의 신앙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2) 어느 정도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타산적인 신앙때문에 항상 망설이는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말씀대로 순종하면 축복이 올 것을 믿으면서도 기회를 놓치는 신앙인이다.

(3) 내일에 대한 축복을 확신하고 모험적인 행동을 결단하는 신앙이다.

키에르케고르는, "모험없이 신앙없다" 고 말했다. 내 생각, 내 계획을 버리고 말씀대로 또한 믿음대로 모험적인 행동을 하는 삶이 곧 참 신앙이며 이러한 믿음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