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권 제 8 권 10호

설교일자: 1999. 3.7.

생명나무를 심자(시1:1-6)

1. 오늘은 사순절기 셋째주일입니다. 지난 두 달동안 실시했던 통합은 무산되었습니다. 두나무를 접합하여 한 나무로 만들려고 했던 우리의 시도는 아직도 믿음에 기초한 생명나무가 되지 못하였음을 우리는 겸허한 마음으로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진정한 믿음의 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이는 바로 생명의 나무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잃어버린 인생을 위한 영원한 생명의 나무를 우리는 믿음으로 심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올해는 화평을 심어 의를 거두고(약3:18) 의를 심어 긍휼을 거두고(호10:12) 성령을 따르는 거룩한 믿음을 심어 영생의 결실을 맺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갈6:8) 헨리 G. 웨스턴은 "성경 속에 있는 그 어떤 말씀도 당신 안에서 생명을 얻지 못한다면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치 당신이 먹는 음식처럼 당신의 일부가 되어야 합니다. 즉 당신이 말씀을 소화시켜 살과 뼈와 근육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입니다."고 하였다.(렘15:16)

2. 먼저 생명나무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심긴 바 되어야 합니다.(렘17:7-8) 뿌리깊은 나무는 모진 비바람이나 심한 가뭄에도 흔들리지 않고 푸른 잎사귀를 내는 것처럼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 안에 터를 세우는 성도는 바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총 안에 거하게 됩니다. 우리의 입술로는 주님께 가까우나 마음에서 멀어질 때 우리는 믿음의 뿌리가 흔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이시기에 우리는 날마다 주님의 말씀으로 무장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렘12:2-3)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자를 위해 빛과 기쁨을 베푸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시97:11) 그러므로 날마다 우리가 주님 앞에 합당한 자인지 늘 돌아보면서 주님을 바라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3. 또한 생명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성장해야 합니다.(골2:6-7)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한다는 것은 바로 그 분의 말씀과 실천을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기는 삶을 말합니다. 예수께서 씨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신 이유는 바로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밭을 갈 자세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말씀도 터가 흐트러져 있거나 말라있다면 씨는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눅8:4-8,15) 우리 마음의 밭을 갈아야 합니다.(호10:12)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야말로 가장 고상한 삶의 표본으로 고백하였습니다.(빌3:8-9) 그는 율법이란 인간적 테두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를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생명의 존재입니다.(계1:18) 그리스도 안에 살아있으면 세상에 있으나 그곳에 빠지지 않습니다.

4. 그리하여 생명의 열매를 맺어가는 거룩한 신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의 신앙성장을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앙성장을 간구하였습니다.(골1:3-6)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1) 인내가 필요합니다.(약5:7-8) 2)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의 의를 구하는 삶이어야 합니다.(빌1:11) 3) 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롬6:22) 그 결과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영생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생명나무를 자라나게 하시고 아름다운 무궁화 예수가 피어나고 그 결과로 영생을 얻게 됩니다.

♧ 주일 공동 기도 ♧

만물을 통해 새 봄의 징조를 보여주시는 하나님,

이 땅이 새롭게 깨어나는 봄비가 내리고 동장군의 한파도 이제 사라져갑니다. 얼어붙었던 우리의 생각도, 믿음도 이제 깨어나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향한 믿음을 모아서 찬양의 날개를 달아 하늘을 향해 힘껏 날려 보냅니다.

당신을 무시하고 당신의 피조물에게 모든 것을 걸었던 우리의 무지와 나약한 믿음을 일깨워 주시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전진할 수 있는 용기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헛된 상념에 가득한 우리의 삶과 자신의 취향과 다르기에 달가워하지 않는 교만한 태도를 회개하오니, 이제 우리의 불의를 용서하여 주시고, 주님의 자비로운 그 진리의 길을 따라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고통스러운 이 시대의 아픔을 통해 겸손과 검소함을 배우며, 근면한 삶이 되도록 인도해 주시고, 각박하고 비참한 이 시대의 잿더미 속에서도 참된 믿음의 길을 발견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희망의 길로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명상의 시간 : 사랑의 실천】

30여년 동안 헬레나 양은 슈바이처의 아내로서 남편의 곁에 머물면서 동부 아프리카 지역의 흑인들을 돌보는 일에 헌신했다. 그리고 슈바이처도 그의 생애를 그들의 병을 치료해 주는 일과, 이론적인 기독교가 아닌 실천적인 기독교를 가르치고 보여 주는 일에 바쳤다.

이런 사람의 철학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의 심오한 학문성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순한 진리를 믿고 있었다. `인종이나 혈색, 인생의 조건에 관계없이 인간은 고귀하다' `생명은 존중되고 경외되어야 한다.' 그가 갖고 있던 또 다른 확신, 즉 그의 인생철학은 가장 고귀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계명을 실천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오직 사랑을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과 사귈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입으로 전파하거나 가르친 것이 아니라 몸으로, 그리고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 어리석어 보였던 그의 결단과 그의 생애는 이미 2천년 전에 나타났던 그리스도와 바울의 발자취에 지나지 않았으며, 수많은 지혜로운 바보들이 오늘날에도 그 발자취를 따라 긴 행렬을 이루며 우리의 역사 속을 행진해 가고 있다.

통권 제 8 권 11호

설교일자: 1999. 3.14.

주님께 인정받는 자(요1:43-51)

1. 오늘은 사순절 넷째주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공자에게 묻기를 '훌륭한 사람은 누구인가'하고 물으면서 '많은 사람이 칭송하는 자가 훌륭하고, 많은 사람이 나쁘다고 하면 악한 자인가'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공자는 훌륭한 사람이 그를 훌륭하다고 하면 훌륭한 사람이고, 나쁜 사람들이 그를 나쁘다고 하면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바로 인간의 가치는 절대적 표준이 되기가 힘듭니다. 주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은 먼저 주님 앞에 인정받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신약성서에서 주님 앞에 옳다함을 인정받은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내면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인정받고 자라난 사람들이 더 큰일을 할 수 있고, 고난을 극복한 사람들이 더욱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음을 우리는 세계사를 통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2. 먼저 우리는 진실한 나다나엘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주님을 위한 참터의 일꾼된 우리들은 변함없는 성실함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묵묵히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경건함과 진실 무망(無妄)한 삶이야말로 우리가 가야할 믿음의 길입니다. 나다나엘은 예수께서 부르실 때에 진실로 거짓이 없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사도가 아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그리스도의 주변에서 항상 믿음의 길을 걷던 사람이었습니다.(요21:2) 그는 그리스도를 진정한 구세주로 신앙 고백한 첫 인물이었습니다. 성실함은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운 덕목이어야 합니다. 초대교회에 이러한 신실한 인물들로 인하여 교회는 성장된 것입니다.(골1:7(에바브라),골4:7(두기고),골4:9(오네시모),벧전5:12(실루아노)) 요한서신에서는 신실한 마음으로 도움을 주는 모습이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요삼1:5)

3. 또한 겸손한 백부장과 같은 고백적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막15:39) 그리스도의 죽음 앞에서 그는 자신이 강력한 로마군대의 지휘자임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분이심을 고백하였습니다. 이러한 겸손한 믿음이 주님을 기쁘게 하는 것(히11:6)입니다. 모든 일에 앞서서 주님을 높여드리고, 어려운 일, 답답한 일을 먼저 주님께 간구하고 외칠 줄 아는 믿음으로 성장해 나갈 때, 그는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권세나 재력, 폭력이 아무리 강해도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는 그저 어두운 세상의 욕심이요, 교만일 뿐입니다. 겸손은 자신의 마음을 낮추는 일이요, 자신의 눈높이를 깨닫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로 겸손히 주님의 말씀을 듣고자 할 때 시작됩니다.(롬10:17,빌2:1-4)

4. 희생할 줄 아는 향유의 여인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진정한 친구의 모습으로 다가선 향유의 여인은 바로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비한 것입니다. 진정한 친구는 어려울 때 힘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그 여인의 '이러한 행위를 기억하라'고 요청하고 계십니다.(살전1:3-7) 헌신적 간호사였던 나이팅게일은 30세 생일일기에 "그리스도의 선교를 시작했듯이 주님의 목적을 위해 살겠습니다."하고 기록했으며, 많은 기자들이 그의 성공비결을 묻자 "주님께서 나를 불러주신 그 뜻에 나를 맡기고 사는 일"이라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자들이 되도록 힘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딤후2:15)

♧ 주일 공동 기도 ♧

훈훈한 봄기운과 따스한 느낌으로 함께 하시는 주님,

오늘 우리의 삶에 늘 새로운 믿음의 날개와 소망을 품도록 인도해 주시니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예배를 통하여 주님의 거룩한 현존을 깨닫게 하시고 나날이 주님의 은총을 기대하며 사는 경건한 하루가 되도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세상의 거친 풍파에 얼룩진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여 주시고, 거룩한 은총의 보혈로 우리의 영혼을 더욱 맑아지게 하셔서 하나님 나라의 평화를 받아들이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실패와 절망 앞에 넘어지지 않게 하시고, 오히려 주님과의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는 기회가 되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성실한 마음, 오묘한 믿음 그리고 다할 수 없는 헌신을 통하여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이 되도록 용기와 은총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성실함과 평화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깊은 위로와 바른 지혜를 허락하시고, 새롭게 역사를 창조해 나가는 일꾼들이 되도록 능력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평화의 인도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명상의 시간 : 기 준】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온 동네 사람들이 그 사람을 훌륭하다고 하면 그는 훌륭한 사람입니까?" 공자는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온 동네 사람들이 나쁘다고 하면 그는 나쁜 사람입니까?" 역시 아니라고 공자는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냐고 묻자 "훌륭한 사람이 그를 훌륭하다고 하면 훌륭한 사람이고, 나쁜 사람들이 그를 나쁘다고 하면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라고 대답했다 합니다

사실입니다. 그를 누가 인정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스스로 자기를 옳다고 인정하거나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인정한다고 옳은 사람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옳다고 인정하실 때 비로소 옳은 사람입니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합니다.

통권 제 8 권 12호

설교일자: 1999. 3.21.

섬김의 도리(요12:24-33)

1. 오늘은 사순절 제5주일입니다. 러시아의 왕 '이완'이란 분이 민정시찰을 행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허술한 모습을 보고 문앞에서 박대하였다. 그런데 가난하지만 순수한 어떤 농부의 집에서 받은 작은 대접에 감사하여 왕이 다음에 행차할 때에 그에게 금자루 선물을 주었다. 섬김의 도리는 바로 이러한 모습에서 발견하게 된다.(마25:31-40) 사람의 현재 모습만 보고 평가하거나 대가를 바라고, 자신을 높여주기를 기대할 때에 이미 그것은 섬김 이전에 내적인 불의함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의 믿음은 이러한 것이 아니다. 미국의 흑인인권운동가였던 킹 목사는 그의 마지막 설교에서 말하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 마르틴 루터 킹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다가 갔다고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 내 생애에서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찾다가 갔다고, 뭇 사람을 섬기고 사랑하다가 갔다고 말해 주기를 나는 바랄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진정한 섬김의 도리는 바로 이러한 마음자세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2. 섬김은 주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에서 출발한다. 섬길 줄 아는 지식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렘10:7) 하나님을 받아들일 때 하나님을 섬기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명령은 이 땅이 참터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마음과 생각이 하나되고, 고통과 슬픔이 없어지는 온전한 터를 꿈꾸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입니다.(엡1:10-12) 이것은 인간적인 욕심으로, 강제적인 힘으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만이 이러한 시대를 이룰 수 있습니다.(사33:6) 모세의 신정(神政)으로도 이루지 못했고, 다윗과 솔로몬의 선정(善政)으로도 이룩하지 못한 그 시대는 바로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하나되기 이전에는 이룩할 수 없는 것입니다.

3. 고난은 새로운 희망을 위한 도전입니다.(벧전5:10) 그러므로 우리는 한 알의 밀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썩어지고, 무너지고, 희생할 때 값진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맨 마지막 나오는 타이틀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없다면 감독도, 주연배우의 이름도 영화제작 마저도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이러한 희생이 무의미한 것 같지만 숨어서 수고하는 그들의 모자이크를 통하여 아름다운 명화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믿음 또한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꿈을 이룩하기 위한 성도들의 모자이크입니다.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 가운데 최선의 것(the Best One)을 추구하는 사람이 될 때 그들은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공동체를 구원의 길로 이끌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4. 영광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애를 통해 주시는 선물이다.(벧전4:13) 섬김의 사람에게 영광과 명예를 희망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선물을 기대하고 하는 행동은 이미 위선이기 때문입니다. 테레사 수녀에게 어떤 사람이 다가와서 '부유한 사람, 평안한 사람, 높은 자리에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대해 시기심이 생기지 않느냐?'고 묻자 대답하기를 "허리를 굽히고 섬기는 사람에게는 위를 쳐다 볼 수 있는 시간이 없"다고 대답한 일화가 있다. 주님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자는 뒤돌아볼 겨를도 없고, 다른 것에 관심을 기울이게 될 때 그 나라의 실패자가 되어버리고 만다.(마7:13-14)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묵묵히 그리고 차분하게 이루어 나가는 성도가 될 때 성도의 직분을 올바로 감당하게 될 것이다.(딛2:11-14)

♧ 주일 공동 기도 ♧

지극한 사랑의 힘으로 함께 하시는 주 하나님,

봄의 향연은 기다리는 우리를 향해 나아오건만 그 기다림과 고통은 우리의 영혼을 더욱 시달리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나간 날들을 회상하면 그것이 바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예비하신 사건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이 있었기에 영광의 부활사건이 더욱 값졌던 것과 같이 우리의 죄악을 불사르고, 불의를 제하여 아름다운 영혼을 소유한 건강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거룩한 영으로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켜 주시며, 주님을 향한 원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날마다 최선의 삶과 성실한 결단이 뒤따르는 저희들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자만의 요새가 무너지게 하시고, 고독한 절망 그리고 뼈를 깎는 고통가운데 주님을 다시 한번 만나는 기회가 되기를 원하오니 주님께서 우리의 붙잡아 주시고 뜻을 곧게 세울 능력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날마다 새롭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명상의 시간 :고난뒤의 새로움 】

황량하고 거친 산 속에 살고 있는 새 한 마리가 어느 날, 들에 나갔다가 폭풍을 만났습니다. 그 새는 자기의 둥지를 떠나지 않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해서 그 산을 향해 날아가려고 발버둥쳤습니다. 자기가 태어나 살고 있는 산을 떠나면 죽을 만 같아서 안간힘을 썼으나 그것은 허사였습니다. 폭풍을 이기고 날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 새는 폭풍이 부는 대로 자기의 몸을 맡기고 그 방향으로 날기 시작했습니다. 강한 폭풍을 따라 한참 날아갔습니다. 드디어 폭풍도 약해졌습니다. 그런데 그 새의 눈앞에는 푸른 초장과 멋진 수풀의 아름다운 산이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과거에 자기가 살던 거친 수풀의 산과는 비교도 안되는 훌륭한 수풀과 산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현실을 거부하고 닥쳐온 고난을 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하는 고난 가운데 함께 하시고 우리를 향한 영원한 뜻과 계획을 받아들여 우리로 하여금 더욱 새롭게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통권 제 8 권 13호

설교일자: 1999. 3.28.

주님과 더불어 살자(사50:4-11)

1.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주님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영적으로 타락되어 가는 이 시대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 없이는 우리 자신의 존재의 가치도, 의미도 찾지를 못합니다. 나아가서 이 세상에 대한 공포 가운데 자신을 극복한다는 것 자체도 어려운 일입니다. 송명희 씨는 고통스러운 장애 가운데에서도 그의 시 "나는 항상 그와 말할 수 있네"를 통해 하나님과의 깊은 대화의 영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주님과 더불어 살고자 노력했던 바울은 성도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그리스도 안에(In Christ)"라는 표현을 132회나 사용했다고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진정 주님을 모시고,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고 있는지, 또한 그분 마음에 새긴 거룩한 서원은 어떠한 지 뒤돌아보아야 합니다.

2. 진정 주님의 사람은 열린 마음으로 봉사해야 합니다.(사58:6-7) 봉사란 타인을 위한 것이며, 동시에 바로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서로 협동하는 사회는 미래가 밝습니다. 기러기는 ∧자 형태로 날아가면서 서로를 지탱해주기 때문에 70%나 힘이 덜 들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남들보다 정의를 앞세운다고 합니다.(습2:3) 그러나 정의보다는 사랑이나 봉사가 앞설 때 주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신앙의 동기는 바로 사랑으로 인한 기쁨입니다. 사랑을 위하여 성도들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더 큰 열매를 얻게 됩니다. 예전에 어떤 영화에서 젊은 목사가 호화유람선이 침몰될 때에 사람들을 구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맨 마지막에 철판으로 막혔으나 구조대가 용접기로 녹여 구출하는 장면을 나옵니다. 최선은 아름다운 결과를 가져옵니다.(신7:9)

3. 또한 우리는 주님의 도우심을 확신해야 합니다.(사41:10-13) 주님이 함께 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심을 확신할 때 우리는 외롭지 않습니다. 영원한 우주의 미아와 같은 존재 같다고 할지라도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결코 혼자 있지 않습니다. 사막 한가운데 버려진 하갈과 이스마엘에게도 함께 하시었고(창21:14-18), 답답한 지경에 있는 야곱(창32:6-12)과도 함께 하신 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은 우겨 쌈을 당하는 진퇴양난의 삶 가운데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사명을 마칠 때까지 최선을 다하였고(고후4:8-10), 이름 없는 성도들 역시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내 힘, 내 능력으로 살아 보려고 노력하지만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자비로운 손길을 놓쳐 버릴 때 우리는 미아와 같은 인생이 되고 맙니다.

4.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의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호6:3) 주님께 의존한다는 것은 영적인 확신과 그리스도의 값진 희생을 통한 것이며, 무의식적이거나 유아적 의존이 아닙니다. 바울은 주님을 믿는 우리 모두가 장성한 믿음을 가진 성도가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이는 세상의 시험과 유혹에서 벗어나 주님의 의를 힘입어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롬7:6) 주님의 말씀과 그 선포에 귀기울일 줄 알고 분노와 슬픔에서 벗어나 날마다 새로워지는 믿음으로 나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시작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끝을 맺는 인생들이 될 때 그 삶이야말로 주님과 더불어 산 인생인 것입니다. 주님으로 인해 복의 근원이 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창12:2,렘17:13)

♧ 주일 공동 기도 ♧

우리의 영혼을 충만하게 하시는 주님,

활기찬 발걸음, 피어나는 꽃들을 통해 생기를 주시고, 우리의 영혼에 단비를 허락해 주시니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낮의 해와 밤의 어둠 속에서도 우리를 지켜 주시고, 주님을 향한 소망을 품도록 도와주시니 더욱 감사를 드립니다.

사순절이 기울어 가는 이 때에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을 경하하는 심정으로 이 자리에 모여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의 무기력함과 게으른 영혼을 일깨워 주시며, 날마다 주님이 함께 계심을 믿고 따르기를 원하오니 우리의 발걸음을 충성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선으로 악을 이기며, 사랑으로 미움을 극복하는 지혜와 진실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반석에서 샘물나게 하시고, 주님의 계명으로 기뻐하는 저희들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영원한 친구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명상의 시간 :누가 더 잘 알수 있을까?

젊은 자동차 정비사가 헌차를 한대 싸게 샀다. 거의 굴러가지 않을 정도의 고물차를 열심히 수리해서 타고 달리니 기분도 좋았고 자기의 기술이 자랑스럽기도 하였다. 하루는 그 차를 운전하여 약간의 장거리를 여행하게 되었다. 그런데 도중에 엔진이 털털거리더니 딱 멎어버렸다. 젊은이는 차에 내려서 엔진의 뚜껑을 열고 고장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때 마침 지나가던 차 한대가 옆에 대고 정차하더니 노인 한사람이 내려와 젊은 정비사의 곁에 와서 엔진을 함께 들여다 보았다. 정비사는 그 노인을 바라보고, "문제없읍니다. 그냥 가세요 나는 정비사이니까요."라고 하면서 자신만만한 태도로 여기 저기를 찾아 만져 보았다. 그러나 고장을 고치지 못하고 발동은 여전히 안 걸렸다.

그때까지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노인이 말했다. "젊은이 내가 좀 도와주지" 그러면서 손가락 한 개로 엔진의 한 부분을 '톡'친 후 "자 발동을 걸어 보시요"라고 했다. 의심쩍은 얼굴로 청년이 발동를 걸어보니 엔진이 붕붕하면서 잘 돌아간다. 기가 막혀진 정비사 청년은 그 노인을 향하여 의아스러운 눈으로 물어보았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도대체 누구 십니까?" 그러자 노인이 대답했다. "네, 나는 이 자동차를 만든 헨리포드입니다."

형제 자매들이여,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께로 온 것이다. 하나님만이 당신의 생명과 영원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계신 분이다. 그 분의 말씀을 청종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