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실존론적 신학과의 만남(미국유학시절)

이화여고 교목생활을 하면서 나는 미국 뉴 죠지에 있는 감리 교신학의 명문 뜨루대학교 신학부에서 두 번에 걸쳐서 공부할 수 있었다.(1962-63,66-67)이는 1958년 봄 일본에 초청교수로 있으면 서 한국을 방문한 바 있는 실존론적 신학자 칼 마이켈슨에게 배 우기 위해서였다. 그는 당시 보스톤대학교는 슨릿신학의 미국적 번역인 인격주의에 서 있던 즈볼프가 있어서 독일신학의 영향아 래 있는 이들에게는 좋은 길이 아니라고 권고해 주었다. 뜨루대학교는 푸른 숲에 둘러 쌓여 있는 캠퍼스와 이름난 스 타교수들이 하나의 학파처럼 뭉쳐있었다. 조직신학에 마이켈슨, 철학적 신학은 스텐리 하퍼, 구약에는 B.앤더슨, 신약은 로버트크 가 강의하고 있었다. 첫해에 영어가 짧았지만, 나는 이 학교에서 불고 있는 불트만, 고가르텐, 에벨링의 실존론적 신학과 키에르케고르, 하이데거의 실존론적 해석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뛰어들기 시작하였다. 실용주의나 언어분석철학 또는 과정철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미국 학생들보다는 도스토예프스키나 키에르케고르 그리고 니이체의 사상을 알고 있던 내가 더 이 학교의 학풍에 쉽게 접근할 수 있 다는 것을 알고 나는 이 학교에서 마음놓고 공부할 수 있게 되었 다.
스탠리 하퍼 교수는 헬라사상의 도전 속에서 교부들이 어떻게 복음을 변증하였으며 어떻게 신학을 형성해 나갔는가라는 변증신 학의 문제를 아레네우스 연구에서 전개한 이래(학위논문) 계속 현대 구라파의 실존주의 사상의 도전과 만나는 기독교의 변증 문 제를 묻고 있었다. 언제나 대지를 밟고 있다는 것을 잊은 듯 학 문에 심취되어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한 이 노교수의 강의는 너 무 난해하여 mysterious 또는 obscure 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 다. 융과 하이데거 휠더린과 릴케 사이를 오고 갔던 하퍼는 일본 동도에서 선불교를 공부하기도 했다. 릴케 연구에서 그는 현대인 의 고향상실은 신을 객관화하는 오늘의 사고와 언어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하며, 종교란 마음의 방향이고 신이 보고 있는 것과 같은 방향에서 보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종착역으로 신앙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신이상의 신"을 믿는 길을 가 리키는 손가락으로 신앙의 근거가 된다. 사람들은 신이 보고 있 는 방향을 다만 그리스도의 손가락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 신과 그리스도는 결코 객관적으로 대상화 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정 치신학(theoploitica)이 아니라 시신학(theopoesis)의 과제를 역설 하는 하퍼의 근저는 "생성의 눈- 상상의 신학을 향하여"이다.
내가 뜨루에서 결정적으로 영향을 받은 이는 1965년 비행기 사고로 급서한 칼 마이켈슨의 역사로서의 신학이었다. 니이버와 틸리히가 은퇴한 미국신학의 장래를 짊어졌던 이 젊은 신학자는 난해한 독일철학 신학을 간명하게 강의하는 것 때문에 많은 학생 에게 사랑 받은 명교수였다. 바르트 신학을 뒤집고 일어난 '50년 대 전후의 불트만 붐을 미국에 끌여들여온 문제의 신학자였다. 그는 하이데거가 존재 개념에서 그리고 바르트가 신의 말씀에서 새롭게 체계를 세우려고 하였듯이 역사라는 개념을 가지고 신학 을 재구성하려고 했다.
신앙의 실재는 자연이 아니고 역사이므로 역사적 해석학은 결 코 생의 의미 물음과 관계되지 않는 실재를 문제시 하지 않는다. 이점에서 마이켈슨은 틸리히가 인간 실존을 분석하는 경우, 상징으로서의 궁극적 물음은 이미 존재 자체에 본질적으로 관계 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너무 깊이 대답의 영역으로 들어가 있으 므로 대답으로서의 그리스도 계시가 불필요하게 된다고 보고 틸 리히의 존재론적 실존주의 신학에 회의를 던진다. 바르트 신학은 기독교 신앙의 역사적 성격을 가리우는 자연적 요소가 너무 강하 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신화적 표현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대하여 가지는 구원의 의미라고 보는 불 트만을 택하는 것은 바로 마이켈슨이 초자연적 형이상학적 사변 을 버리고 생의 의미물음과의 관련에서 신학하려는 그의 역사적 해석학의 과제 때문이다. 그러므로 양성기독론은 그에게 있어서 너무 실체론적이고 정적으로 균형 잡힌 무의미한 것이었다. 마이켈슨은 자연에서 역사를 구별하며 역사를 실존적 역사와 종말론적 역사로 이분한다. 실존적 역사에 나타난 생의 무의미성 은 종말론적 역사와의 만남에서 밝혀지며 여기에서 실존론적 사 고는 초극된다. 실존적 역사를 세계사와 실존사로 이분하는 마 이켈슨의 종말론적 역사도 성서의 역사(구속사)와 종말론적 역사 (구속사건)로 이분한다. 그는 구속사를 궁극적인 것으로 보지 않 고 그리스도의 구속사건(Heilsgeschehen)에서 철저하게 해석되어 야 한다고 본다. 구속사가 구속사건을 해석해서는 안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구속사는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에서 우리에게 결단 을 촉구하는 신의 말씀인 그리스도 사건에서 해석되어야 하기 때 문이다. 역사의 자연화를 배격하고 그가 종말론적 역사이해를 시 도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마이켈슨은 불트만의 비신화화의 시도가 고가르텐과 에벨링에 게 교의학으로 전개된다고 보며 해석학적 신학에 깊은 관심을 표 명했다. 그러나 마이켈슨은 불트만의 역사성(Geschichtlichkeit) 개념에서 배우면서 아래서 위로의 실존적 해석을 브라운처럼 너 무 극단적으로 밀고 나갔기 때문에 신의 필연성은 드디어 역사 속에서 해소되므로 신의 초월성을 부정하게 되는 극단적인 경향 을 달리기도 한다. 그가 알타이저의 신의 죽음의 신학에 찬사를 보낸 것에는 깊은 의미가 있다고 보겠다.
그러나 동양사람으로서 그의 신학에 회의를 갖게 되는 것은 그의 역사로서의 신학은 그같은 급진적인 과격성에도 불구하고 극히 서구신학의 폐쇄된 보수성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일 본의 신학적 공헌}은 널리 알려진 책이다. 그러나 그는 끝내 일 본의 불교철학에서 배우는 데 인색한 폐쇄적이며 전투적인 신학 자였다. 선불교는 기독교 신학자가 대화하고 배워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저주하고 정복하여야 하는 어떤 것으로만 보았기 때 문이다. 에벨링이 문화적 해석학으로 발전시키며 다른 문화에서 의 복음의 재해석을 심각하게 문제시 한 것과는 달리 그는 토착 화의 과제에는 거의 무관심하였다. 윤성범 교수의 토착화 신학에 대하여 그는 한국신학의 시대착오라고 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불교의 자비개념에서 신의 아픔 개념을 발전시킨 일본의 기다모 리 신학을 "일본의 신학적 표현의 영혼"이라고 격찬하며,"가장 독 창적" 신학이라고 높인 것을 보면 반드시 반토착화의 입장을 취 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나는 뜨루에서 독일신학을 호흡할 수 있었다는 것을 평생 잊 을 수 없는 자랑으로 생각한다. 뜨루는 내 눈을 스위스에로 돌리 게 한 곳이기도 하다. 내가 뜨루대학교 신학부에 제출한 석사학 위(STM)논문은 "로마서 제2판에 근거한 죄렌 키에르케고르와 칼 바르트의 신학적 상관관계의 가능성"(1967)이라는 장편의 작품이 었다. 귀국하자 나는 모교인 감리교신학대학에서 조직신학을 강 의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