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바르트 신학과의 만남(성화 감신, 신학 시절)

기계 공학을 공부한 것 때문에 진남포 제련소에서 설계사로 있다가 평양에 있는 성화신학교로 찾아 간 것은 1948년의 일 이었다. 공산주 의자들의 박해 속에서 이 신학교의 분위기는 엄숙한 경건이 흐르는 신 앙과 사랑이 가득찬 공동생활이었다. 소박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던 나에게 충격을 준 것은 신약 개론과 구약개론에서 알게된 문헌학적 역 사비판적 연구였다. 그리고 여기에서 내가 처음 만난 조직신학자는 김 용련 목사다. 김목사는 일본에서 배운 바르트 신학의 영향아래 있었으 나 당시 사용하고 있었던 텍스트인 정경옥의 [기독교 신학 개론] (1939)에 제약되고 있었기 때문에 바르트적인 강한 악센트가 나타나지 않았다. 정경옥은 미국에서 리츨신학에 영향을 받고 돌아와서 감신에 서 교편을 잡다가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조직신학 개론을 쓴 분이 다.
6.25사변이 일어났다. 1.4후퇴 때 단신 남하하게 된 나는 1951년 가 을 부산에서 다시 연 감리교신학교를 찾게 되었다. 윤성범 교수는 마 침 출간된 틸리히의 [조직신학] 1권을 가지고 철학적 신학의 새 가능 성을 보여 주었다. 철학이 신학 형성에 그처럼 중요한 몫을 하고 있었 다는 것을 알게 해 준 것이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홍현설, 송정 률, 김철손 교수는 우리 신학생들의 존경의 새로운 대상이 되었다. 특 히 명강의로 이름났던 홍교장은 조직신학과 윤리의 분야를 담당하고 있었다. 신정통주의 특히 니이버 신학을 강의하며 교의학과 윤리, 종교 와 문화 사이를 다리 놓으려던 홍박사는, 니이버나 베네트 처럼 현대 의 예언자적 실존같이 보였다. 편협한 도그마티스트나 성서주의자와는 달리, 계속 새 시대의 문화에서 배우며 인간과 역사를 이해하려던 니 이버처럼 무의식적으로 자기의 진리인식에 숨어 들어오는 ''이데올로기 적 오점''인 ''무지의 무지''라는 교만을 끝없이 초극하며 기독자의완전 에 이르는 길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원리와 함께 상황과 관계하며 예언자이면서도 정치가이려고 한 니이버나 베네트처럼, 이분은 사회변 혁을 외치면서도 급진파가 교회의 세속화에 무비판적이며 사회적 계급 을 초월한 인간의 실존적 요구인 생의 의미 물음에 무관심하다고 비판 한다. 새 세대나 새 권력자도 구세대나 예 권력자가 빠진 똑같은 유혹 에 떨어지기 때문에 크리스챤은 정치가 생의 전체가 될 수 없으며, 적 대자도 인간이라는 신앙을 버려서는 안된다고 한다. 지적, 도적덕 딜레 마를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953년에 육군 군목으로 종군하게된 나는 틈틈이 어학(영, 독, 불)을 공부했다. 1958년 나는 하바드 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한 한신 의 박봉랑 박사를 찾게 되었다. 나는 이 스승 밑에서 개혁파 신학과 바르트 신학의 정수에 접하게 되었다. 종교와 역사와 도덕의 범주를 중시하여 만들어 졌던 인간중심의 자유주의 신학이라는 바벨탑이 돌 하나 남지 않고 무너지며 새로운 성서의 세계가 열려오는 것을 느꼈 다. 신에 이르려는 인간의 문화와 종교와 교회와 같은 인간의 일체 활 동의 성과와 승리는 신 앞에서는 한 푼의 가치도 없으며 무일뿐이다. 사상의 길도 도덕의 길도 종교의 길도 있을 수 없다. 성서 속에는 살 아계신 신의 말씀에서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것으로 하나의 책 속에 놓여 있는 굳어진 전통적인 신의 말씀이 아니라 영원의 순간에서 이간 과 실존적으로 만나서 부르시고 명령하며 축복하시는 신의 말씀이 있 다... 그러기에 ''신학은 말씀하시는 신의 말씀의 신학으로서만 가능하 다.''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이 봉사이다.''(Ministrium verbi diviniti)(바 르트)
박박사는 바르트의 [로마서](1921)에 나타난 성서해석학 곡 ''신학적 주해''(Theologische Exegese)를 바울신학과 종교개혁의 성서원리인 성서 의 자기 해석(Scriptura sacra suiipsius interpres)의 재정립이라고 본다. 그는 텍스트와 독자 사이에 놓여 있는 시공의 거리를 깨치고 동시대성 에 이른다는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적 해석학을 칼빈의 주석방법인 영적 해석과 동일시한다.(칼 바르트 기념논집, 84쪽) 칼빈적이며, 바르트적인 박박사의 복음주의 신학이 보여주는 하나님의 말씀과 계시에 대한 배 타적인 관심 때문에 박사의 강의는 늘 ''폴 틸리히''를 강의하던 서남동 목사의 철학적 신학과 맞서게 되었다. 공동적(Katholische)이며 세계교 회적(Oekumenisch)인 연속성과 보편성을 띠어야 할 신학이 어떻게 시 대나 지역에 따라서 달리 이해되는 실존 개념 위에 세워져야 하는가? 그렇게 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의 보편성은 어떻게 되는가가 문 제였기 때문이다.1962년 이래 선생이 계시를 한국 문화나 재래 종교와 관계시키며 한국적 신학을 형성하려는 감리교 신학자 윤성범 박사와 대결하였던 것은 바로 선생 속에 불타고 있었던 복음주의 신학의 정열 때문이었다. ''토착화의 문제는 어떻게 기독교 복음을 재래 문화에 적 응시키는가가 아니고 어떻게 성서적 패턴에 따라서 문화를 변혁시키고 갱신시키는가에 있다. 문화의 변혁은 교회의 복종을 통한 신의 구속행 위의 승리를 뜻한다.''(The Northeast Asia Journal of Theology, September,1969,p.111)
토착화의 출발점은 역사에 나타난 신의 구속사건, ''오직 그리스도로 만''이지 결코 문화와 종교가 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한국 장 로회를 예수파와 그리스도파로 나누게 하였던 문제, 성서 축자영감설 을 뒤집고 성서와 계시를 분명히 구별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한국장로 교의 프론티어 신학자 박봉랑 박사는 그의 신학의 스승 바르트의 계시 신학이 부정한 종교와 문화에 의하여 바로 그 계시 신학이 다시 도전 받고 있다는 새로운 신학적 풍토를 바라볼 수 있는 신학적 비전이 부 족하였던 것 같다. 신의 죽음 이후의 현대신학의 새판도는 바르트를 비롯하였던 신정통주의 신학의 죽음 이후의 새로운 신학적 상황이다. 한때 우리는 ''기독교를 알고 있는 이는 모든 종교를 알고 있다''(하 르낙)고 하였으나 기독교 이후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오늘날 막스 뮬 러처럼, ''오직 하나의 종교밖에 모르는 이는 어느 종교도 모른다''고 하여야 하게 되었다. ''그리스도도 모르는 이는 사실 그리스도도 모르 는 이다''(월터 호오톤). 그리스도에 대한 성서의 증언은 서로 다른 문 화적 사회적 상황에서 증거된 해석된 말씀, 이미 토착화 된 말씀이기 때문이다.
한신대학교에서의 나의 석사논문은 웨슬리의 은총론이었다. 나는 신 정통주의 신학의 강한 도전 속에서 웨슬리를 네오오도독스로 해석하려 고 극히 웨슬리적인 것들, 성령체험이나 기독자의 완전 사상을 부정적 으로 삭제 하려고 하였다. 내가 웨슬리 신학을 신정통주의 신학의 바 빌론 포수에서 해방시켜야 하겠다고 깨달은 것은 스위스 유학 뒤에 생 긴 최근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