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창제

소리는 사람의 입을 통하여 나온다. 그리고 그 소리는 발생하는 위치에 다라서 다섯가지 소리로 나누어진다. 세종의 생각은 여기에서 한순간도 벗어나지 않았다. 앉아서나 누워서나 오직 새 문자의 자형을 정하는 일에만 골몰해 있었다. 획은 단순해야 하고 그 수는 적을수록 좋을 것이다. 세종은 집현전 학사들과의 문답도 쉬지 않았다. 그렇다. 소리를 내는 혀와 입과 목구멍과 입술의 움직이는 형상을 그린다면 가장 정확하고 과학적인 자형을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 세종은 누워있다 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먹을 갈아 종이에다 정성들여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금니소리-아음(牙音) -- 군(君) 규(壗) 쾌(快) 업(業)

혓소리- 설음(舌音) -- 두(斗) 담(覃) 탄(呑) 나(那)

입술소리-순음(脣音) -- 별(抶) 보(步) 표(漂) 미(彌)

잇소리 - 치음(齒音) - 즉(卽) 자(慈) 침(侵) 술(戌) 사(邪)

목구멍소리 - 후음(喉音) -- 읍(湌) 허(虛) 홍(洪) 욕(欲)

다 쓰고나자 세종은 몇번이고 이 분류된 글자들을 발음해 보았다.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는 것처럼 도박도박 읽어내려가며 혀의 움직임을 떠올렸다. 그러나 자신의 입술과 형의움직임을 알수 없어서 중궁전으로 달려가 중궁과 더불어 그 소리를 연구하였다. 공비와 더불어 기본글자인 衁, 遁, ꁁ, 걁, 둁을 토대로 초성을 연구하였고, 된소리, 거센소리, 탁한소리, 맑은 소리, 유성음, 무성음 등을 생각하여 닿소리 17자를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어금니소리 -- 衁, 군(君)/ 쑁, 쾌(快)/ 萈, 업(業)

혓소리 -- 遁, 나(那)/ 鑁, 두(斗)/ 졁, 탄(呑)

입술소리 -- ꁁ, 미(彌)/ ꑁ, 별(抶)/ 챁, 표(漂)

잇소리 -- 걁, 술(戌)/ 롁, 즉(卽)/ 쁁, 침(侵)

목구멍소리 -- 둁,욕(欲)/ 逅,읍(湌) 큁,허(虛)

반혓소리 --鱁,려(閭)

반잇소리 -- 萇,양(穰)

그후 세종은 종이에 적힌 초성 17자를 집협전 학사드레게 내주었다. 그들은 신기한 듯 돌려가며 글자의 모양을 보았다. 그후 세종은 그들이 다 보기를 기다렸다가 기본글자 다섯 개를 만들게 된 동기와 과정을 소상히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기본글자를 토대로 다른 12자의 자형이 이룩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였다.

"어금니 소림의 기본글자인 衁은 그 소리가 평탄하다. 그런데 우리가 쓰는 말 가운데는 이보다 거센소리가 많이 있음이야 다라서 나는 이 거센소리를 나타내는 글자로 衁에 한 획을 더하여 쑁을 만든 것이다. 쑁은 어금니 소리 衁의 거센소리이니 쾌(快)자의 첫 발성과 같은 이다.

鑁,졁 소리도 마찬가지이다. 이 소리들은 遁과 같이 혓소리인데 그 세기는 遁보다 한결 강하다. 결국 鑁은 遁에 한획을 더 한 것이요, 졁은 鑁에 한 획을 더한 것이다. 이 밖의 모든 다른 글자들 모두 이와같은 이치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가 지금 만들려고 하는 글자는 그 자형을 자연의 사물에서 빌어온 뜻글자가 아니라 말하는 바를 그대로 옮겨 쓸수 있는 소리글자이다. 그리고 이미 그 초성을 완성해 놓았다. 그러나 경들도 알고 있겠지만 소리 글자의 특징은 초성 하나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초성과 중성과 종성이 어우러져야 비로소 하나의 글자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내개 보기에는 중성은 입안에서 아무 장애도 받지않고 발음된다. 다만 그 소리가 여러 가지로 나오는 이유는 입안에서 취해지는 혀의 다양한 움직임에 의한 것이지." 최항은 말하기를 그렇다면 중성의 자형 역시 혀의 움직임을 본뜨면 능히 이를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자 세종은 혀의 움직임이 어찌나 빠르고 다양하고 복잡한지 좀처럼 그 움직임을 파악할 수 없다 하였다.

겨울이 이르자 세종은 하늘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하나의 예지에 몸을 떨었다. 하늘, 땅, 사람, 이것이 무엇인가? 바로 우주를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세가지 요소가 아닌가! 이것을 옛사람들은 삼재(三才)라 하여 우주형성의 근본으로 삼았다.

세종은 초성 17자를 만들 때 오행(五行)의 도를 따라 오음(五音)을 이루었다. 우주는 음양과 오행의 도에 따라 움직이게 되어 있다. 그래서 세종은 다섯가지 기본음을 오행의 도에서 빌어온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음양의 도 역시 소리와 밀접하게 관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음양의 도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삼재 천(天), 지(地), 인(人)인 것이다. 하늘은 양이요, 땅은 음이며, 사람은 중간이다. 세종은 편전에 들어 하늘의 형상을 그려보았다. 가운데 소리는 크게 세가지로 구분된다.

혀는 오그라지고 소리는 깊다. 모든 소리의 근본이며 말고 투명하다. 아 <·>

혀는 조금 오그라지고 소리는 깊다. 포근하며 안정감을 준다. 능히 땅에 견줄수 있다. 으<蝡>

혀는 오그라지지 않고 소리도 얕다. 어딘지 모르게 가볍고 들뜬 느낌을 준다. 하늘과 땅 사이에 살아가는 사람과 견줄수 있다. 사람이 서있는 모양이다.<螡>

먼저 하늘과 땅이 사귀는 형상은 두가지밖에 없다. 세종은 먼저 <蝡>자 위에 <·>를 배합하여 <>를 만들고 <蝡>자 아래에 <·>를 배합하여 <>자를 만들었다. <>는 입을 오무려 말하는 <오>이고, <>는 <우>이다.

다음으로는 하늘과 사람이 사귀는 형상이다. 이것역시 두가지 형상이다. <螡>의 오른쪽에 <·>를 배합하여 <>를 만들어 냈고, <螡>의 왼쪽에 <·>를 배합하여 <>를 만들어 냈다. <>의 소리는 맑고 고운 <아>이며, <>는 음을 상징하는 <어>이다.

세종은 여기서 다시 지금까지의 글자들을 음양에 따라 구분했다.

천(天)(양(陽) - 葡, 蟁 , 薡

지(地)(음(陰) - 蓡, 蝡, 蚁

인(人) - 螡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세종의 마음은 가볍지 않았다. 무엇인가가 빠진 느낌이었다. 그리하여 가운데 겹친 소리는 어찌할까를 생각하여 다음과 같이 하였다.

야는 아에서 나온 소리이니 <螡:> 으로 하면될 것이고, 여는 어에서 나온 소리이니 <:螡>로 하면될 것이다. 또 유는 우에서 나온 소리이니 <>로 하면 될 것이고 요는 둁에서 나온 소리이니 <>로 나타내면 될 것이다.

비로소 세종은 마음이 가벼워졌고, 하늘을 나는 듯 기쁨이 용솟음 쳤다. 이제 초성인 鑼소리 글자 17자와 중성인 홀소리글자 11자가 완성된 것이다. 마지막으로남은 것은 종성인 끝소리뿐이었다. 그러나 세종은 이것을 해결하는데 그다지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모든 만물은 처음 땅에서 태어나서 땅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음양오행의 도에 따라 초성인 닿소리를 그대로 종성으로 삼았던 것이다.

세종25년(1443년) 12월30일

세종은 마침내 언문(諺文) 28자를 만들고 이를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 이름하였으니 글자 그대로 백성들을 가르치는 바른 글이라는 뜻이었다. 세종은 심안 안질과 풍질에도 불구하고 수년간의 각고 끝에 결국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라는 기적적인 대위업을 이루었다.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 최항등의 학사들 눈에서는 감격의 눈물이 쉬임없이 흘렀다. 그후 세종은 과인의 진정한 뜻은 글자를 만드는 것이 있지않고, 모든 백성들이 새 글자를 써서 모르는 바를 깨닫고 새로운 지식을 얻게함에 있는 것이라 하여 새문자를 만들게 된 동기와 그 사용법 및 원리를 밝혀주는 책을 만들도록 하였다.

또한 각지방의 다른 방언을 수집하여 하나로 통일하도록 하여 의사소통하는 데 불편이 없도록 하였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쓰는 한자말을 우리나라 말로 정리하는 작업(운음정리)을 하도록 했다.

훈민정음의 제작원리와 해설은 정인지,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이개 이선로 등 문자창제에 가담했던 학사들에게 위임했고, 우리나라 말의 음운과 방언정리는 신숙주, 최항, 성삼문,강희안, 조변안, 손수산 등엑 맡겼다. 마지막으로 한자음의 정리는 신숙주, 성삼문, 조변안, 김증, 박팽년, 이개등에게 맡겨 오랜시간을 두고 정리하게끔 했다. 이박에도 세종은 권제, 정인지, 안지 등으로 하여금 선왕들의 공적을 찬양하는 대서사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언문으로 짓게하여 새 문자를 시험하였다. 이는 그 글자를 만든후 전적들의 가해를 받을까 염려하였던 것이다.

세종 28년 9월 28일

훈민정음의 해례를 마쳤다. 세종은 지필묵을 들어 훈민정음의 서문을 친히 쓰셨다.

나랏말돁미 中듕國귁에 달아 文문字뿗와로 서르 꿁ꏕ디 아니평돡

이런 젼쏁로 어린 百꟢姓셩이 니르고져 폐배이셔도

마쏑내 제 흡을시러펴디 ꆨ 폐노미 하니라

내 이鿉 爲윙폁야 어엿비 너겨 새로 스믈 여靬 字자鿉 ꏷ가노니

사鿑마다 폡쀶 수니겨 날롭수메 ꥥ�잁 폁고져 폐 鿁미니라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서 문자가 서로 통하지 않는고로,

어리석은 백성들은 마음속의 일을 말하고 싶어도

마침내 그 뜻을 다 펴지 못하는 자가 많도다.

내가 이를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자를 만드었으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는데 편하게 하고자 할 뿐이다

해례의 서문(정인지)

천지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처지자연의 글이 있기 되니, 옛날 사람이 소리로 인하여 글자를 만들어 만물의 정을 통하였다. 이는 삼재(三才)의 도리를 기재하여 뒷세상에서 변경할 수 없게 한 까닭이다.

그러나 사방의 풍토가 구별되매 소리의 기운도 또한 다르게 된다. 대개 외국의말은 그 소리는 있어도 글자가 없음으로 중국의 글자를 빌어서 그 일용에 통하게 되었다. 이것은 둥근 것이 네모진 구멍에 들어가 서로 어긋나 있는 것과 같으니, 어찌 능히 통하고 막힘이 없겠는가. 요는 모두 각기 처지에 따라 편하게 해야만 하고 억지로 같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동방의 예악문물(禮樂文物)이 중국에 견주게 되었으나, 다만 방언(方言)과 이어(俚語,통속언어)만이 같지 않으므로, 글을 배우는 사람은 그 내용은 이해하기 어려움을 근심하고, 옥사(獄事)를 다스리는 사람은 그 곡절의 통하기 어려움을 괴로워하였다.

엣날에 신라의 설총이 처음으로 이두(吏讀)를 만들어 관부와 민간에서 지금가지 이를 행하고 있지만은 그러나 모두 글자를 빌어서 쓰는 까닭으로 난삽하고 비루하여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언어의 사이에서도 그 만분의 일도 통할 수 없었다.

계해년(세종25년, 1443년) 우리전하께서 정음(正音) 28자를 처음으로 만들어 예의(例義)를 간략하게 들어보이고 명칭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 하였다. 물건의 형상을 본떠서 글자는 고전(古篆)을 모방하고 소리에 인하여 음(音)은 칠조(七調, 칠음 곧 궁상각지우(宮商角徵羽))와 반치(半徵)반상(半商)이다.)에 합하여 삼극(三極, 天地人)의 뜻과 이기(二氣, 陰陽)의 정묘함이 구비 포괄되지 않은 것이 없어서 28로써 쓰지 못하는 소리가 없고 간략하면서도 요령이 있고 자세하면서도 통달하게 되었다.

그런까닭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되기전에 이를 이해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만에 배울수 있게 된다. 이로서 글을 해석하면 그 뜻을 알 수가 있으며 이로써 송사를 청단하면 그 실정을 알아낼 수가 있게 된다.

자운(字韻)은 청탁(淸濁)을 능히 불변할 수가 있고, 악가(樂歌)는 율려(律呂)를 능히 화합할 수가 있으므로 사용하여 구비하지 않는 이가 없으니, 비록 바람소리와 학의 울음이든지, 닭울음 소리나 개짖는 소리까지도 모두 표현해 쓸수 있다.

마침내 해석을 상세히 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이해하게 하라 명하시니, 이에 신(臣)이 집현전 응교 최항과 부교리 박팽년, 신숙주, 수찬 성삼문, 돈녕부주부 강희안, 행집현전부수찬 이개, 이선로 등고 더불어 삼가 모든 해석과 범례(凡例)를 지어 그 경개(梗槪)를 서술하여, 이를 본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이 없어도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 연원의 정밀한 뜻과 오묘한 것은 신등이 능히 발휘할 수 없는 바이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우리 전하께서는 하늘에서 나으신 성인(聖人)으로서 제도와 시설이 백대의 제왕보다 뛰어나시어, 정음의 제작은 전대의 것을 본받은 바도 없이 자연적으로 이루어 졌으니 그 지극한 이치가 있지 않은 곳이 없으므로 인간 행위의 사심(私心)으로 된 것이 아니다.

대체로 동방에 나라가 있은지가 오래되지 않은 것이 아니나, 사람이 알지 못하는 도리를 깨달아 이것을 실제로 시행하여 성공시키는 큰 지혜는 대개 오늘날에 기다리고 있을 것인져.


- 신봉승, 조선왕조오백년 12권에서 요약발췌 -